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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룩스 불교 :: CYLOOKS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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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불교조계종 미타사 미타사 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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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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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0
    미타사 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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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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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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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대한불교조계종 미타사 미타사 지장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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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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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0
    미타사 지장보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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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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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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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대한불교조계종 미타사 미타사 추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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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타사 추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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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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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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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대한불교조계종 미타사 미타사 범종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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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타사 범종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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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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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대한불교조계종 미타사 미타사 밝은언덕노인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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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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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타사 밝은언덕노인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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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대한불교조계종 미타사 미타사 지장전 & 선다원, 주차장 e1642082975ae14f1a7e5f92229ec2d8_1717965606_3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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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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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0
    미타사 지장전 & 선다원,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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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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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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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대한불교조계종 미타사 미타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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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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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타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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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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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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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대한불교조계종 미타사 미타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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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타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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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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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대한불교조계종 선학원 보광사 보광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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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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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0
    보광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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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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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0

    사찰의 연혁은 문헌상으로는 전하는 것이 없는데, 여러 전승에 따르면 1788년 금강산에서 수도한 원담스님이 창건하여 신원사라 하였다고 한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인해 소실되고 일부 건물만이 남아 법등(法燈)을 이어왔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근래까지 이 지역에 살았던 노인들의 증언으로 알 수 있었으며, 1980년대 건물을 지을 때 땅에서 많은 기와가 출토됨으로써 신뢰를 더한다.

    1940년대 묵조(默照)스님이라는 분이 보광사 옛이름인 신원사 강원에서 후학을 지도했다는 내용이 충담스님(1998년 감로사에서 소신공양으로 열반)의 행장에 기록되어 있는 바, 일제강점기에도 신원사로 불려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더불어 비교적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를 뒷받침해 줄만한 유물로는 현재 보광사 경내 관음전 앞에 큰 맷돌이 있어 당시 많은 대중이 수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일스님은 1979년 포교의 원을 세우고 폐허가 된 이곳에 주석하면서 중창불사를 시작하였다. 먼저 1980년 11월 보광사로 개명하였고 1985년에는 관음전과 요사 신축, 1990년에는 서울 도심의 유일한 비구(比丘) 수행처인 보광선원 신축, 1993년에는 대웅전, 2002년에는 설법전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중창불사를 통하여 보광사는 교계 내외에 참선수행도량(參禪修行道場) 및 청정천도도량(淸淨遷度道場)으로의 면모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에 더하여 2015년에 석불지장존상을 모셨으며, 지장천도도량으로의 정립을 노력하고 있다.

  10. 대한불교조계종 부석사 부석사 무량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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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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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0
    부석사 무량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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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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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제18호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 수불로도 불리는데 ‘ 무량수 ’ 라는 말은 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 하나 이다. 역사적으로 인정되기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있지만 건물 규모나 구조 방식 ‚ 법식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무량수전에 비하여 다소 떨어진다.그러므로 무량수전은 고대 불전 형식과 구조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 [원융국사비문]에 의하면 고려 현종 7년(1016) 원융국사가 무량수전을 중창하였다고 한다. 1916년 실시된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서북쪽 귀공포의 묵서에는 공민왕 7년(1358) 왜구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서 우왕 2년 (1376)에 원융 국사가 중수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건축 양식이 고려 후기 건물과 많은 차이를 보이므로 원래 건물은 이보다 약 100년 정도 앞선 13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광해군 3년(1611)에 서까래를 깔 고 단청을 하였고 1969년에는 번와 보수하였다. 무량수전은 정면 5칸 ‚ 측면 3칸 규모인데 평면의 경우 건물 내부의 고주 사이에 형성된 내진 사방에 한 칸의 외진을 두른 형식을 취했다. 기둥 사이의 주칸 거리가 크고 기둥 높이도 높아 건물이 당당하고 안정감 있게 지어졌다. 지붕은 팔작 형식인데 지붕의 물매는 후대 건물에 비하여 완만하다. 예로부터 건물의 구조는 단면에 위치한 도리의 수를 셈하여 말하는데 이 집은 소위 9량집으로 외목을 제외한 도리가 9개나 되는 큰 건물이다.

    면석과 갑석을 짜맞추어 만든 가구식 기단과 사갑석을 받치는 지대석이 돌출된 계단 ‚ 원형 주좌와 고막이를 가진 초석의 법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기법을 계승한 것이다. 계단 동측면에 선각된 ‘ 충원적화면(忠原赤花面) 석수김애선 ’ 이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무량수전은 고려시대의 법식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 주지만 그 가운데 가장 유의하여 볼 부분은 평면의 안허리곡(曲) ‚ 기둥의 안쏠림과 귀솟음 ‚ 배흘림 ‚ 항아리형 보 등 의 의장 수법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착시에 의한 왜곡 현상을 막는 동시에 가장 효율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하여 고안되 고도의 기법들이다.

    안허리곡은 보통 건물 중앙보다 귀부분의 처마 끝이 더 튀어나오도록 처리한 것을 말하는데 기둥의 안쏠림과 관계가 있다. 안쏠림은 기둥 위쪽을 내부로 경사지게 세 운 것이다. 무량수전에서는 안허리곡과 안쏠림이 공포와 벽면에까지 적용되어 마치 평면이 오목거울처럼 휘어 있다. 귀솟음은 건물 귀부분의 기둥 높이를 중앙보다 높 게 처리하는 것인데 수평 부재의 끝부분이 아래로 처져 보이는 착시를 막아준다. 기둥의 배흘림 역시 기둥 머리가 넓어 보이는 착시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인데 무량수전 의 기둥은 강릉 객사문 다음으로 배흘림이 심하다.

    무량수전의 공포 형식은 기둥 위에만 배치된 소위 주심포계인데 매우 건실하게 짜여졌다. 주두 위에서 공포의 짜임이 시작되고 벽면 방향의 첨차와 튀어나온 제공의 길이가 똑같은 전형적인 벽면 방향의 첨차와 튀어나온 제공의 길이가 똑같은 전형적인 북방계통의 수법이다. 주두와 소로는 내반된 곡선의 굽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공 포 사이 포벽에 뜬 소로를 가지고 있는 점은 이 집만의 특징이다. 무량수전 정면 중앙칸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이다.

    내부 서쪽에는 불단과 화려한 닫집을 만들어 고려시대에 조성한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국보 제45호)를 모셨다. 협시보살 없이 독존으로만 동향하도록 모신 점이 특이 한데 교리를 철저히 따른 관념적인 구상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불상을 동향으로 배치하고 내부의 열주를 통하여 이를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일반적인 불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장엄하고 깊이감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일 반적으로 진입하는 정면쪽으로 불상을 모시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서는 드문 해결 방식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집을 만든 대목(大木)의 뛰어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대들보 위쪽으로는 후대 건물과는 달리 천장을 막지 않아 지붕 가구가 잘 보인다. 굵고 가늘고 길고 잛은 각각의 부재들이 서로 조화 있게 짜맞춰진 모습은 오랫동안 바 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이와 같은 무량수전의 천장 가구에서 고저장단의 운율을 느낄 수 있다고도 하였다.
    이렇게 천장을 노출시키려면 각각의 부재가 아름답게 디자인되어야 하고 또한 정확하게 짜맞추어야 하므로 품이 훨씬 더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목수들은 이 러한 건물을 많이 지었다. 특히 고려시대 주심포 집들에는 천장을 가설하지 않은 것이 많다.

    원래 내부 바닥에는 푸른 유약을 바른 녹유전을 깔아서 매우 화려하였다. 아미타경을 보면 극락 세계의 바닥은 유리로 되었다고 하는데 녹유전은 이러한 이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장엄 도구의 하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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