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본문 바로가기
싸이룩스 불교 :: CYLOOKS BUDDHISM
카테고리 Hot
전체보기
  1. 대한불교조계종 부석사 부석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0
    부석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0

    e1642082975ae14f1a7e5f92229ec2d8_1717954522_97.png
     

    국보 제45호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 대사가 창건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화엄종 수사찰인 부석사에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전하고 있어 부석사의 유구한 역사를 증명해 준다.

    현존하는 유물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신라시대의 것으로는 절 입구에 세워진 당간지주 ‚ 무량수전 동쪽의 석탑을 비롯한 3층석탑 3기 ‚ 석등 2기 ‚ 그리고 자인당에 봉안된 3구의 석불좌상이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로는 무량수전의 주존으로 봉안된 소조아미 타여래좌상 ‚ 조사당에 그렸던 벽화 6점 ‚ 원융국사비 ‚ 그리고 화엄경 목판 등을 들수 있다. 조선시대의 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 으로 현재 괘불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승당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큰 석조와 맷돌이 남아있어 부석사의 사격(寺格)을 전하고 있다. 또한 경내에는 괘불대 ‚ 석등 의 화사석 ‚ 불상광배편 ‚ 배례석 ‚ 장대석 등 석물의 부재들이 산재해 있다.

    원래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우수한 미술품들이 있었겠지만 경내에 현존하는 유물들은 화엄종의 수사찰인 부석사의 지위와 유 구한 역사에 비해 그다지 많은 수는 아니다. 더구나 이들 가운데 석불상들과 3층석탑 등은 부석사의 유물이 아니고 다른 절터에 서 옮겨온 것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주심포계 건물로 손꼽히는 무량수전과 여기에 봉안된 소조 불좌상 ‚ 현존 최고의 사찰 벽화인 조사당 벽화 ‚ 당간지주와 석등 ‚ 고려각판 등의 유물들은 모두 당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 19 16년 무량수전의 해체 수리 때 대들보에서 금동 약사불입상을 비롯한 20여 구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13구의 불 상들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2. 대한불교조계종 부석사 부석사 조사당 벽화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0
    부석사 조사당 벽화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0

    e1642082975ae14f1a7e5f92229ec2d8_1717954353_8.png
     

    국보 제46호


    부석사에 전하는 벽화 6점은 원래 조사당 벽면에 그려졌던 것이다. 일제 시대에 벽체에서 분리하여 무량수전에 보관하다가 현재는 보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이들은 현 재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사원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 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범천과 제석천 그리고 사천왕상을 그린 것인데 이 절의 창사주인 의상대사를 기린 조사당에 그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를 외호하려는 의도로 제작한 듯하다.


    크기 : 205.0 X 75.0 센티미터


    범천
    범천은 오른쪽(향좌)을 향한 측면관으로 서있는 자세이다.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 얼굴 뒤로 원형의 두광이 희미하게 보이며 앞으로 약간 내민 배 위에 두 손을 맞잡고 있다. 넓적한 얼굴에 긴 눈과 작은 입에서 위엄이 느껴지며 굵은 목 ‚ 넓고 듬직한 어깨 등이 전체적으로 풍부한 양감과 함께 건장한 인상을 풍긴다. 가슴께에 요대를 한 곤룡포 모양의 옷을 입고 있으며 소매 속으로 맞잡은 듯한 양팔 위로 드리운 천의가 발끝까지 늘어져 있다. 허리 아래 는 박락이 심하고 후대에 색을 다시 입혀 정확한 묘선과 채색을 살필 수 없지만 풍만한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 ‚ 옷단의 화려한 장식 문양 등 귀족적인 모습으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존상으로 여겨진다.

    제석천
    범천과 마주보이는 측면관을 취한 제석천은 화려한 보관을 쓰고 합장한 보살형이다. 아름답고 단아한 얼굴 ‚ 좁은 어깨와 날씬한 체구 등 여성스럽고 우아한 자태이며 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구슬과 꽃으로 장식된 보관을 머리에 썻으며 보발이 어깨 위로 길게 내려와 있다. 합장한 양팔 위로 웃옷의 끝단이 좌우로 날카롭게 뻗쳐 있는 데 양팔에 걸쳐진 천의는 아래로 흘러내려 유연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이들 범천과 제석천은 모두 암녹색 바탕에 먹선으로 윤곽을 그린 후 진홍 ‚ 살색 ‚ 녹색 ‚ 등의 채색 을 가했는데 얼굴이나 의복 등에 보이는 묘선은 매우 부드럽고 유연하게 흐른다.

    사천왕
    귀부인 같은 느낌을 주는 범천과 제석천과는 달리 수호의 임무를 맡은 사천왕상은 그들의 성격처럼 굴곡이 심한 활달한 곡선을 구사하 여 매우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동방의 수호신인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새털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왼손에 칼을 든 채 악귀를 밟 고 서 있다. 둥그렇게 부릅뜬 눈 ‚ 곱슬곱슬한 눈썹과 수염 그리고 울퉁불퉁한 코는 올빼미 같은 투구 장식과 함께 무섭다기보다는 희화적 (戱畵的)인 느낌을 자아낸다. 건장한 신체를 감싼 천의와 갑옷 역시 굴곡이 심한 묘선의 강조로 약동하는 천왕의 모습을 구체화시키려 하였다. 양다리 사이로 내려온 옷자락은 두 가닥으로 나뉘어지고 그 사이에 악귀가 그려져 있는데 단단히 눌려 옆으로 일그러진 입은 단 순하지만 인상적이다.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어깨를 들어올리고 몸은 오른쪽으로 틀고 있어 활달하고 율동적 인 모습이다. 오른손은 배 위에 얹었고 왼손으로 화살을 잡고 있다. 가슴 쪽의 천을 묶은 매듭을 갑옷 아랫단과 경갑 위에도 그려 넣어 치 밀하고 장식적인 느낌을 준다.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사천왕 가운데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외호신다운 위엄이 잘 나타난 작품으로 두 발로 악귀를 단단히 누르고 서서 칼을 잡고 있다. 갑옷에는 발밑의 악귀처럼 생긴 그러테스크한 귀면이 그려져 있다. 이들 과 함께 여러 가닥의 천의가 몸 주변으로 복잡하게 흐르는데 약간 형식적인 형태이다.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은 오른손을 허리에 대 고 있으며 ‚ 다른 상과는 달리 한 발을 들어올려 악귀를 밟고 있는 당당한 모습 이다. 눈썹과 수염이 곧고 코와 입은 인간적인 모습이다. 광목천왕처럼 귀면 장식이 여러 개 붙은 갑옷을 입고 있으며 왼손에 긴 창을 쥐 고 있다.

    이상의 벽화들은 현재 박락(물건이 오래되어 긁히고 깍이어 나감)과 개채(색을 다시 입힘)가 심하여 정확한 양식을 살피기 어렵다. 이 벽화들의 제작 연대는 지금까지 조사당 장여 묵서명의 기록대로 1377년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도리 하단에 1201년에 개채한 것을 다시 1493년에 개채하였다 고 한 묵서명의 기록으로 보아 1377년 제작설은 제고해 보아야 한다. 또한 사천왕상의 표현 기법은 [인종일채]의 선각 천부상과 같은 12세기 작품과 비교되며 ‚ 14세 기 불화의 양식보다는 유연하고 세련되었기 때문에 이들 벽화의 제작 시기는 14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3. 대한불교조계종 부석사 부석사 괘불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0
    부석사 괘불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0

    현재 부석사에 전하는 괘불은 1754년에 제작된 것이다. 원래 부석사에는 이 괘불이 제작되기 60년 전인 숙종 10년(1684)에 제작된 괘불이 있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기에 의하면 ‚ 이것이 훼손되어 1745년 현재의 괘불을 다시 제작하였고 1684년에 만든 괘불은 수리하여 충청도 청풍 신륵사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의 괘불은 1684년 괘불의 구도와 유사하여 그것 을 범본으로 삼아 그린 것으로 보인다.

    크기 : 8.6 X 6미터 / 재료 : 마(麻)에 채색


    e1642082975ae14f1a7e5f92229ec2d8_1717954233_25.png
     

  4. 대한불교조계종 부석사 부석사 고려 각판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0
    부석사 고려 각판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0

    보물 제735호


    이 각판은 부석사에 소장된 정원본(貞元本) ‚ 진본(晋本) ‚ 주본(周本)의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을 새긴 목판으로 13~14세기에 제작되었다. 대방광불화엄 경(大方廣佛華嚴經)은 크고 방정하고 넓은 뜻을 가진 부처님의 설법을 화려한 꽃으로 장식한 것 같은 경전이다. 부석사 화엄경판은 우리나라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 사가 창건하여 화엄사상을 발전시켜 나간 부석사에 소장되어 그 가치가 더욱 크다.

  5. 대한불교조계종 부석사 부석사 역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0
    부석사 역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0

    신라의 불교는 눌지왕 때에 들어와 법흥왕 때에 수용된 뒤에 크게 발전하였다. 중국을 통하여 전입된 교학 불교는 신라 불교로 하여금 종파성을 띠게 하였는데 가장 특징적으로 운위되는 종파는 화엄종과 법상종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전법사실이 뚜렷하고 종찰이 확실한 것은 의상의 화엄종이다.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찰로 초조인 의상 이래 그 전법 제자들에 의해 지켜져 온 중요한 사찰이다. 의상은 676년 부석사에 자리잡은 뒤 입적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그의 법을 이은 법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석사 원융국사비에는 지엄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은 의상이 다시 제자들에게 전법하여 원융국사에까지 이른 것과 원융국사가 법손이 된 뒤 부석사에 자리잡았다는 사실 등이 밝혀져 있다.

    중국 유학후 수도처로 삼아 안주하다가 뒷날 거대한 사찰을 이룬 곳이다. 그러나 부석사의 생김을 정리한 역사적 기록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비석에 쓰인 몇 문자나 절을 재건한 기록 ‚ 보수한 기록 등만이 전한다. 부석사가 세워지기까지에 관해 ‘ 삼국사기 ’ 에는 고승 의상이 임금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창건했다는 내용이 전하며 삼국유사에는 “ 의상이 태백산에 가서 조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세우고 대승교(대승불교)를 포교하니 영감이 많이 나타났다 ” 고 전한다. 그리하여 신라 문무왕 16년(676) 2월에 의상대사가 문무왕이 뜻을 받들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처음 절이 생겨날 당시가 오늘날과 같은 대규모는 아니었다.

    의상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소백산이나 태백산 등지에 초가를 짓고 불경을 강의하거나 토굴에서 화엄세계의 심오한 뜻을 닦은 것으로 보아 7세기 후반의 부석사는 의상의 영정이 있는 조사당을 중심으로 초가집이 몇 채 있는 아주 청빈한 양상이었을 것이다.

    의상의 제자인 신림 이후 부석사는 인적 물적 측면에서 차츰 변화했다. 신림은 훌륭한 제자를 많이 배출하였으며 부석사의 화엄종을 크게 중흥시켰다. 또한 규모면에서도 크게 변모하여 현재 부석사의 기본 구조라고 할 수 있는 대석단과 석등 ‚ 석룡 ‚ 장대석 ‚ 석탑 등이 경문왕 무렵에 건립되었다.

    대석단은 불국사 ‚ 원원사 ‚ 망해사 등에서 볼 수 있듯 신라 하대 이후에 세워진 사찰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양상이다. 무엇보다도 국보 제 17호인 석등이 경문왕때(861∼874)에 만들어진 점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대규모 사찰 건립이 가능했던 것은 신림이 배출한 수많은 화엄대덕들이 국가로부터 상당한 물질적인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예컨대 부석사에서는 신라 왕의 상을 그려서 벽화로 걸어 놓고 있을 정도였다. 후삼국 시기에 궁예가 이곳에 이르러 벽화에 그려진 신라 왕의 상을 보고 칼을 뽑아 내쳤는데 그 흔적이 고려 때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부석사가 위치한 태백산은 신라 오악 가운데 중사를 지내던 곳으로 흔히 북악(北岳)으로 불리워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의상의 법손들을 북악파라고도 하였다.화엄종의 본찰인 부석사는 신라 하대에는 대석단 위에 세워진 거대한 가람으로 많은 대중들이 생활하는 곳으로 변하였고 승려가 되기 위해 처음 출가하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이곳의 주지로 있으면서 대장경을 인쇄하였고 그 일부를 부석사와 안국사에 봉안하였다. 따라서 지금 부석사에 전해지는 화엄경판은 원융 대덕 때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구한말 민속학자인 이능화선생의 화엄경판고란 책에 의하면 “ 고려 초에 태백산 부석사에서 2종의 화엄경을 목판에 각했다 ” 고 하였다. 부석사에 현존하는 원융대덕의 비문에 의하면 그의 성은 김씨이고 자는 혜일이었다.

    12세에 용흥사에서 출가하여 복흥사에서 수계하고, 28세에 대덕이 되었다. 정종 때 왕사 ‚ 문종때는 국사가 되었다. 그가 귀산사에 유행하였을 때 그가 귀산사에 유행하였을 때 ‚ 꿈에 미륵보살이 나타나서 “ 네 품속에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해요 ‚ 다른 하나는 달이다 ” 고 말하는 순간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는데 이 일이 있은 뒤 자를 혜일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는 정종 7년(1041)에 부석사에 들어가 화엄종통을 이어받았다. 1053년 부석사에서 세수 90세 ‚ 법랍 78세로 입적하자 왕은 원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부석사 동쪽 언덕에 있는 원융국사비의 건립 연대는 명문의 마멸이 심하여 확인할 길이 없으나 입적 이듬해인 고려 문종 8년 (1054)으로 추정된다. 비문에는 의상 당대의 부석의 모습과 그의 법손들이 줄곧 이곳에 주석해 온 것을 알려 주는 귀중한 내용이 담겨있다. 기타 고려 때 많은 부석사의 건물들이 중창되거나 창건 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부석사를 중수한 기록은 자주 발견된다. 조선 성종 21년(1490)에 조사당을 중수하였고 성종 24년(1493)에 조사당에 단청을 하였다.

    명종 10년(1555)에 화재로 인해 안양루가 소실되었으며 선조 6년(1593)에는 조사당 지붕을 개수하였다. 선조 9년(1596)부터 11년까지 석린 스님이 안양루를 중건하였다.

    광해군 3년(1611)에는 폭풍우로 인해 무량수전의 중보가 부러져 중수하였고 경종3년(1723)에는 무량수전 본존불의 금색을 다시했다.

    영조 22년 (1746)에 화재로 승당 ‚ 만월당 ‚ 서별실 ‚ 만세루 ‚ 범종각 등이 소실되었으나 그 이듬해에 중수하였고 영조 44년(1765)에는 무량수전 본존불의 금색을 다시했다.

    일제 시대인 1919년에 무량수전과 조사당을 해체 수리하였는데 이때 허리 부분이 잘린 석룡(石龍)이 노출되었다고 한다.

    또한 무량수전 서쪽에 있던 취원루를 동쪽으로 옮기고 취현암이라 한 것도 이때라고 한다.

    1967년에 부석사의 동쪽 옛 절터에서 쌍탑을 옮겨 범종각 앞에 세웠고 1969년에는 무량수전 기와를 갈았으며 1977년부터 1980년에 걸쳐 전체적으로 정화하면서 일주문 ‚ 천왕문 ‚ 승당 등을 신축하였다.

  6. 대한불교관음종 흥륜사 흥륜사 전각 배치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09
    흥륜사 전각 배치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09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704_22.jpg
     


  7. 대한불교관음종 흥륜사 흥륜사 대웅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09
    흥륜사 대웅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09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646_69.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646_8.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646_94.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647_08.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647_21.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646_17.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646_29.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646_41.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646_53.jpg


  8. 대한불교관음종 흥륜사 흥륜사 만불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09
    흥륜사 만불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09

    흥륜사 정토원(봉안당) 만불전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552_2.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552_53.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552_35.jpg
     

  9. 대한불교관음종 흥륜사 흥륜사 약사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09
    흥륜사 약사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09

    흥륜사 약사여래전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465_76.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466_02.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465_39.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466_26.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466_13.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466_42.jpg
     

  10. 대한불교관음종 흥륜사 흥륜사 지장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09
    흥륜사 지장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09

    5천 조상님 위패안치 지장전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396_58.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396_05.jpg
    bfffdcc520b07a1b32488f0315078f40_1717939396_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