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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청평사 청평사 거북바위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25
청평사 거북바위-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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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청평사 청평사 진락공 이자현 부도(眞樂公 李資玄 浮屠)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25
청평사 진락공 이자현 부도(眞樂公 李資玄 浮屠)-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25
부도란 스님이 입적하고 화장을 하고 나온 사리를 봉안한 석조물을 말하는데 승탑(僧塔)이라고도 한다
영지 서쪽의 각산당 부도와 함께 담장 안에 건립되어 있다. 부도의 주인공을 진락공 이자현으로 알려 져 있으나 명확하지 않다.
조선시대 후기 강원도 관찰사 정두원이 청평사 스님인 문옥(文玉)에게 진락공의 유골을 다시 묻도록 하였고 심중량이 춘천부사를 지낼 때 부도를 세웠다고 한다. 심중량은 청평식 암이 있던 계곡에 1706년에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수하였다는 암각문이 있다.암각문은 ‘강희사십오년병술이월일/행부사심중수/석수이강금(康熙四十五年丙戌二月日/行府使沈重修/石手李康金)’인 데 이로 보면 진락공의 부도는 청평식암이 있던 계곡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영지 서쪽에 세워진 부도는 이 부도는 진락공이 아닌 다른 스님의 부도라는 설도 있다. 단지 이중환의 「택리지」에 진락 공의 부도가 절의 남쪽 10리 지점에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근거로 후대인들이 진락공의 부도로 부른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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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청평사 청평사 영지 명문 바위(影池 銘文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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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청평사 청평사 영지(影池)
-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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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5
청평사 영지(影池)-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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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5
영지란 천단(天壇)의 주변에 건립되었던 견성암(見性庵) 이 연못에 그림자처럼 비친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의 연못으로 물이 맑으며 작은 바위 서너 개가 못 가운데 나란히 있다.
고려시대 진락공 이자현이 청평사 골짜기 전체를 사찰 경내로 삼아 선원(禪園)을 가꿨는데 그 중심에 영지가 있도록 했다고 하며 조선 초기 김시습의 한시를 비롯한 많은 문인들의 시에 언급되어 있다.일본이 자랑하는 교토(京都) 사이호사(西芳寺)의 고산수식(枯山水式) 정원보다 200년이나 앞선 정원이라고 하며 한국 정원사(庭園史)에 중요한 자료이다. 지금도 연못에 물결이 일지 않으면 부용봉과 주변의 경관이 물속에 그림자처럼 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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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청평사 청평사 청평선동(淸平仙洞)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25
청평사 청평선동(淸平仙洞)-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25
청평사에서 서천을 지나 선동으로 진입하는 선동계곡 입구 동쪽 암벽에 새겨 놓았다. 누구의 글씨인지 암각문에 새겨져 있지 않으나 이자현이 썼다고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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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청평사 청평사 척번대(滌煩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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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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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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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청평사 청평사 선동부도(仙洞浮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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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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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5
청평사 선동부도(仙洞浮屠)-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25
이 부도는 적멸보궁과 거의 같은 해발고도의 동쪽 산능성이에 위치하며 누구의 부도인지 알 수 없어 무명부도라고도 불린다.
1990년대 후반에 부도의 중대석이 멸실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사리함을 도굴하기 위해서 훼손된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훼손 사유를 알 수 없다. 중대석이 멸실되고 탑신석과 옥개석이 다시 올려져 있는 것을 보면 중대석이 인근 계곡에 있을 가능성이 있으나 발견할 수 없었다.훼손 전에는 전체높이가 1.3m였다. 거칠게 다듬은 적심석은 구릉지에 건립되었기 때문에 하부가 거의 드러나 있다. 방형의 지대석과 중대석 괴임이 같은 돌로 만들었고 연꽃문양을 조식하였다. 중대석은 팔각이며 상대석은 앙련을 돌려 새겼다. 탑신은 원구형이나 상하가 조금 체감되어 원통형에 가깝다. 옥개석은 팔각원당형이고 추녀에서 반전이 심하다. 전체적으로 옥개석이 커서 둔중한 감을 주고 있으나 작고 아담한 부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