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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갑사 갑사 삼성각 산신탱화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26
갑사 삼성각 산신탱화-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26
심산유곡(深山幽谷)의 산수(山水)를 배경으로 호랑이를 탄 산신(山神)께 시동(侍童) 2인이 다과를 올리고 있다.
이 불화는 일반적인 불화와는 전혀 다른 형태인데 그것은 산신신앙이 한국고유의 신앙형태였다는데 기인한다. 즉 호법선신(護法善神)에 수용된 토속신이 인도(사천왕, 제석, 8부신장, 인왕 등)나 중국(칠성, 명부, 시왕)의 재래신인데 비하여 산신은 한국의 토속신으로 한국에서 비로소 신중탱화에 모셔지게 되고, 그 원래의 기능인 만사형통이 강조되어 산신단을 조성하고 삼성각[산신각]을 건립하게 된다. -
대한불교조계종 갑사 갑사 삼성각 칠성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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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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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6
갑사 삼성각 칠성탱화-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26
칠성탱화는 중앙에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그 협시로서의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 그리고 상방에 7여래(七如來), 그 향좌(向左)에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하방에는 향좌(向左)에 삼태육(三太六)의 육성(六星), 중앙에 삼태성(三太星), 향우(向右)에 칠성(七星)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는 도교신앙의 불교적 전개로 형성된 신앙형태라고 볼 수 있는데 치성광여래는 북극성의 불교화, 칠여래는 북두칠성의 불교화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갑사 갑사 대웅전 신중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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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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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6
갑사 대웅전 신중탱화-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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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6
외호성중(外護聖衆), 즉 신중(神衆)이란 재래적 토속신앙의 대상이었으나 대승불교가 발달함에 따라 이들을 모두 불교가 수용하여 그 신앙적 기능을 불교를 보호하는 선신(善神)으로 한 것을 말한다.
갑사 대웅전의 신중탱화는 상하양단의 구도로 되어 있는데 상단에는 제석(帝釋)을 중심으로한 천부상(天部像)이 하단에는 8부신장이 중심이 된 신중(神衆)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선신(善神)을 도상화한 불화를 신중탱화라고 하며. 많은 신들을 배치하여 다양하고 복잡한 구도를 보이는 신중탱화는 일반적으로 제석(帝釋)과 하늘의 군사인 천룡(天龍)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무장을 한 신중들을 배치한다. -
대한불교조계종 갑사 갑사 대웅전 삼장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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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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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6
갑사 대웅전 삼장탱화-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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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6
삼장탱화는 외호성중(外護聖衆)[신중(神衆)]을 천장회상도(天藏會上圖)[중앙], 지지회상도(地持會上圖)[向右], 지장회상도(地藏會上圖)[向左]로 3구분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재래신을 호법선신으로 수용한 것으로 천상계의 신과 지상의 신, 지하의 신을 수용하였슴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여기 각 회상도에서 중앙의 주존(主尊)은 천장보살(天藏菩薩)과 지지보살(地持菩薩),지장보살(地藏菩薩)로 삼장(三藏)보살이라고 하며 다른 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불화이다.
삼장보살은 각자의 권속을 거느리고 있는데 천장보살은 진주보살과 대진주보살, 지지보살은 용수보살과 다라니보살, 지장보살은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를 이루고 있으며 그 외에 여러 성중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청평사 청평사 유무형 문화유산 배치도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25
청평사 유무형 문화유산 배치도-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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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청평사 청평사 공주와 상사뱀(공주설화/公主說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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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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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5
청평사 공주와 상사뱀(공주설화/公主說話)-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25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 태종의 딸인 평양공주가 있었는데 청년이 그를 사랑하였다고 한다.
이에 황제는 일반 백성인 청년이 황제의 딸을 사랑한다는 노여움을 받아 처형되었다. 청년은 죽어서 뱀으로 변해 공주의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상사뱀의 이름은 이런 이유로 생기게 되었다). 황제는 점술가와 의원을 불러 치료를 부탁하였으나 모든 방법이 듣지 않았다. 또한 중국의 여러 사찰을 돌며 부처님께 빌어 보았으나 효험이 없자 신라에서 온 스 님에게 말을 듣고 신라의 산하를 두루 다녔다.그렇게 다니던 중에 청평사에 도착한 공주는 공주굴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아침 종소리를 듣고 뱀에게 절에 가서 밥을 얻어 올 테니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동안 공주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던 상사뱀이 공주의 몸에서 떨어져 공주는 절에 올라갔다. 마침 절에서는 가사불사를 하고 있었는데 공주는 공주탕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가사에 서너 바늘을 뜬 다음 법당에 들어가서 염불을 하고 있었다.
기 다리다 지친 상사뱀이 공주를 찾아 정문을 들어가려 할 때 뇌성벽력과 함께 소나기가 쏟아져 물에 떠내려가고 말았다. 후세 사람들은 이 문을 회전문이라 부르게 되었다. 공주가 밥을 얻어 동굴로 돌아와 보니 상사뱀이 죽어 폭 포에 떠 있었다. 공주는 시원하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하여 청년의 화신인 상사뱀을 묻어 주고 이 사실을 본국에 알렸다.
당나라 태종은 재상 저수량에게 공주의 혼인 때 쓰려고 비축해 두었던 금덩어리 세 개를 주어 화려한 법당 을 세우게 하였다. 저수량은 금 한 개로 법당과 공주 이궁 및 저수량 봉교서비를 세우고 또 한 개는 장차 중건할 때 쓰라고 어디에 묻었으며 나머지 한 개는 공주의 귀국 여비로 주고 떠났다. 공주는 구성폭포 위에 삼층석탑을 세 워 부처님 공덕을 찬양하고 귀국하였다. 그런 이유로 이 탑을 공주탑이라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신라와 당나라는 급속히 친밀해져 삼국통일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한다. 이외 다양한 내용으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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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청평사 청평사 삼층석탑(淸平寺 三層石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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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5-25
청평사 삼층석탑(淸平寺 三層石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8호-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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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5
청평사 입구의 구송폭포 동북쪽 환희령 위의 자연암반 위에 건립되었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8호(1984.6.2. 지정)이다.
탑의 구조는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노반 이상의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3층 옥개석은 계곡에서 찾아 복원하였고, 3층 탑신석은 새로 만들어 얹었다. 2중기단의 3층석탑으로 상층과 하층의 기단에는 우주와 탱주가 2:1로 새겨져 있다. 각층의 탑신석에 는 우주를 모두 새겨 놓았고 옥개받침은 모두 4단이다. 3층 옥개석 윗면에 찰주를 세웠던 구멍이 남아 있다.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옥개석의 추녀선이 위로 올라가 날렵한 감을 준다. 총높이는 3.1m이다.청평사 창건설화로 전해오는 공주설화로 인하여 당나라 태종의 딸인 평양공주가 건립했다고 하여 공주탑이라고도 한다.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청평사 창건시기로 볼 때 고려초에 건립된 석탑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