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유가사(瑜伽寺)는 대구 달성군 유가읍 유가사길 161번지에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절의 창건에 관하여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765~780년, 신라 혜공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과 827년, 신라 흥덕왕 2년에 도성(道成) 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889년, 진성여왕 3년 탐잠(垣岑)이 중창하였으며, 1047년, 고려 문종 1년 학변(學卞)이 중수하였으며, 1452년, 조선 문종 2년 일행(逸行)이 중수하였다.
사찰이 번성하였을 무렵 99개의 암자, 3천 명의 승려가 머물렀으며, 일연스님도 한때 이곳에 기거했었다.
1592년,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 1682년, 조선 숙종 8년 도경(道瓊) 화상이 대웅전을 보수하였고, 1729년, 조선 영조 5년 취화(就和)와 파봉(巴峰)이, 1760년, 보월(寶月)이, 1776년, 밀암(密庵)이, 1797년, 낙암(洛巖)이 각각 중수 또는 중창한 바 있다.
1976년부터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현재 건물로는 대웅전, 용화전, 나한전, 산령각, 범종루, 일주문, 천왕문, 국사당, 시방루, 염화실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석조여래좌상, 삼층석탑, 15기의 부도 등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비구니 수도도량인 수도암과 참선도량인 도성선원이 있다.
비슬산, 유가사 이름의 유래 일연 스님은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승려이다. 가지산문은 신라 말기 도의 선사가 전남 장흥군 가지산 보림사를 거점으로 일으킨 산문이다. 도의 선사는 우리나라 선종의 원조로 꼽힌다. 선종의 흐름은 고려시대 3대 종파 가운데 하나인 유가종으로 이어졌는데 여기에 일연스님이 있었다. 비슬산 자락에 있는 유가사나 유가사가 있는 지명인 유가읍에서 자취를 느낄 수 있다.
비슬산은 그 이름에서도 신비로운 냄새가 난다. 신라시대 인도스님들이 와서 산을 보고 '비슬(琵瑟)'이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비슬은 인도의 범어(梵語) 발음을 그대로 옮긴 것인데, '덮는다'는 뜻으로 한자로 쓰면 포(苞)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포산'이라 했고, 지금도 일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포산을 쓴다. 의병장으로 이름 높은 망우당(忘憂堂)곽재우(1552~1617)의 본관이 포산인데, 유가읍 바로 옆 현풍읍을 이른다. 그런데, 일연은 <삼국유사>에 주(註)를 남겨 "그 지역 사람들은 소슬산(所瑟山)이라 불렀다."고 적었다. '소슬'과 '비슬'은 통하는 바가 있다. 소슬은 '솟다'에서 왔고, 비슬은 '(닭)벼슬'에서 왔다. 둘 다 우뚝하다, 둘레에서 가장 높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비슬산은 둘레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뜻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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