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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사성암 사성암 10. 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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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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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사성암 10. 지장전-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12
지장전은 염라대왕등 10왕을 모시는 전각이다.
주존으로 지장보살을 모시는데 지장보살의 모습은 일반 불상과 달리 승려의 모습으로 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머리는 삭발하여 두건을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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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사성암 사성암 13. 산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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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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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사성암 13. 산왕전-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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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산왕전은 오산 산신을 모시는 곳이다.
오산 산신은 백발노인으로 묘사되고 호랑이는 산신의 지시에 따르는 영물로 산신 옆에 위치한다. 삼신산을 배경으로 손에 부채나 불로초를 들고 수염과 긴 눈썹을 휘날리는 모습의 산신 탱화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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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사성암 사성암 12. 소원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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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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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사성암 12. 소원바위-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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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부처님의 형상을 닮은 바위가 서있는 이곳은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고 하여 소원바위로 불린다.
뗏목을 팔러 하동으로 내려간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내를 잃은 설움으로 숨을 거둔 남편의 애절한 사연이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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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사성암 사성암 15. 배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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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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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사성암 15. 배례석-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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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배례석은 절을 찾는 불자들이 부처님께 합장하고 예를 갖추는 장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사성암에서는 불상을 모시기 전에 수행하는 스님들이 이 배례석에서 화엄사 부처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며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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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사성암 사성암 14. 도선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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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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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사성암 14. 도선굴-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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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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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사성암 사성암 창건 및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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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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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사성암 창건 및 역사-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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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전남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에 위치한 오산(鰲山)은 해발 530m의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지리산과 섬진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산세가 자라 모양과 비슷하여 큰자라 오(鰲)자를 써서 오산이라고 부른다.
오산 꼭대기에 자리한 사성암은 544년 백제 성왕 때 백제의 고승이자 화엄종의 시조인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온다. 당시에는 오산암이라고 불리기도하고 참선하는 바위가 있어 선석암(禪石庵)이라고도 하였다.
사성암사적(四聖庵史蹟)에는 오산암에서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 등 4명의 고승이 수도하여 사성암(四聖庵)으로 고쳐 불렀다고 기록됐다. 또한 네 명의 선인들이라 일컫는 사선(四仙)이 수도하여 ‘사선암(四仙岩)’이라고 부른다고 기록됐다.
사성암 약사전(藥師殿)은 마애여래입상이 새겨진 깎아지른 절벽에 기둥을 받치고 있으며 유리광전(琉璃光殿)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약사전 뒤쪽 벽에는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렸다고 전해지는 마애여래입상이 음각되어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사성암 사성암 일원
-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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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사성암 일원-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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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오산 정상 부근의 깎아지른 암벽을 활용하여 지은 사찰 로 백제 성왕 22년(544)에 연기조사가 건립하였다고 전 한다. 원래 오산사라 불리다가 의상대사, 원효대사, 도선 국사, 진각국사 4명의 고승이 수도한 곳이라 하여 ‘사성암 (四聖庵)’이라 일컫는다.
문화재지정 : 명승 제 111호
위치 :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산4 -
대한불교조계종 사성암 사성암 마애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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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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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사성암 마애여래입상-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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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사성암에서 수도하던 원효대사가 선정에 들어 손톱으로 그렸다는 설화가 있다. 머리에는 넓적하고 낮게 솟은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을 하고 있으며, 왼쪽 어깨의 옷 주름 이 촘촘한 격자무늬인 점이 특이하였다.
문화재지정 :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제220호
제작연대 : 고려시대
높이 : 높이 3.9m
위치 :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산4 -
대한불교조계종 미황사 달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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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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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달마산-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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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달마산에 관한 기록은 고려때부터 나온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남송 사람들이 달마산을 다녀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런 기록도 있다.
도솔암 북쪽에는 서굴(西窟)이 있는데 신라 때 의조화상이 그곳에 살면서 낙일관을 수리하던 곳이다. 서쪽 골짜기에는 미황사와 통교사가 있다. 지원 신사년 겨울에 남송의 큰배가 표류해 와 이산 동쪽에 정박했을 때 한 고관이 산을 가리키며 주민에게 묻기를
‘내가 듣기에 이 나라에 달마산이 있다던데 이 산이 그 산이가. 우리나라에서는 이름만 듣고 멀리서 공경할 뿐이었는데 그대들은 이곳에서 성장했으니 부럽고 부럽다.' 고 하며 그림을 그려갔다고 한다.
미황사를 품은 산이 왜 달마산인지 그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달마대사의 이름에서 연유한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해발 489미터인 달마산은 소백산맥이 한반도 서남쪽의 해남 두륜산을 거쳐 최남단 땅끝을 향해 뻗어 내려가다 남해에 이르기 전에 솟은 바위산이다.해남군 송지면과 북평면에 걸쳐 있는 이 산은 암릉이 기묘한 모습이 길게 다도해를 향해 펼쳐져 있어 한폭의 그림같은 산이다. 달마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남도의 풍경은 가히 장관이다.
북쪽으로는 남도의 명산 두륜산(701M)이 위풍당당한 자태로 서있고, 동쪽으로는 그 옛날 바다의 영웅 장보고의 행상왕국이었던 완도섬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달마산 바위 암릉이 도솔봉(421m)을 지나 멀리 땅끝까지 내달리고, 서쪽 해남반도 해안 너머로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 진도가 육지처럼 버티고 서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달마산에는 조선시대 축조한 봉화대와 금빛이 나는 큰 금샘, 작은 금샘이 있다.
이밖에도 도솔암과 몇몇의 암자터를 더 만날 수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미황사 미황사 전각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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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5-12
미황사 전각 배치도-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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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2
미황사에 주석하고 있는 자운스님과 현공스님, 금강스님이1989년에 주인없이 비어있던 미황사에 오게 되었습니다.
흔적만 남은 명부전, 삼성각, 만하당, 달마전, 부도암 등을 복원하고, 퇴락한 세심당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10여년 간 중창불사원력을 세워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면모가 일신되었습니다.
현재의 전각은 보물947호인 대웅보전, 보물1183호인 응진당과 명부전, 삼성각, 만하당, 달마전(승방), 세심당(객실), 향적전(객실), 안심료(후원), 자하루(누각), 하심당(종무소)이 반듯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