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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3교구 관음사 관음사 공양물접수처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4
    관음사 공양물접수처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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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대한불교조계종 옥련사 옥련사 목조여래좌상 (지방유형문화재 제188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3
    옥련사 목조여래좌상 (지방유형문화재 제188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3

    이 불상은 현재 옥련사 법당(대웅전)안에 봉안된 3존불 중 본존불이다. 이 불상은 옥련사에 원래부터 봉안된 것이 아니고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에 있는 정수사에서 한국전쟁시기인 1951년에 옮겨온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1991년 5월, 강진군과 강진향토사가에 의해 복장물이 공개된 바 있다. 이 불상의 양식을 살펴보면 상호는 아무런 개성이 보이지 않는 4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고개는 앞으로 숙이고 있는데 그 각도가 많이 수그린 편이다. 머리는 나발이나 육계와 거의 구분되지 않고 전면에 계주가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이마에 백호가 보이며 눈은 눈꼬리가 약간 치솟았다. 법의는 두툼한 통견이나 오른쪽 어깨에 걸친 법의자락이 팔굽까지만 내려왔으며 그 이하는 반나로 처리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시대 후기까지 연결되는 법의의 양식임을 알 수 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는데 왼손은 별도로 만들어 끼운 것이며 왼손의 손목 끝부분에 `석가`라 묵서하여 이 불상이 석가여래임을 표시하고 있다. 앉은 자세는 오른발이 왼발위로 올라오는 항마좌를 취하고 있고 어깨선은 거의 각을 이루고 있어 경직된 느낌을 주고 있다.

    복장 유물은 장방형의 한지로서 가로 75.8㎝, 세로 77.7㎝이며 행서로 묵서한 것이다. 내용은 불상을 조성하게 된 배경과 당시 참여했던 시주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기문의 내용을 보면 1684년 봄에 불상조성을 시작하여 그해 겨울 11월 18일에 완성하였다. 그런데 이 불은 16나한전에 보신 16나한을 조성하면서 이 불상도 함께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 조성기는 당시 주지였던 천기(天機)스님이 쓴 것이다. 불상조성문과 함께 여기에 딸린 복장유물이 함께 발견되었다. 이 목조여래좌상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약 90년이 지난 시대로서 이제 서서히 전란의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면서 다시 기운을 찾는 그러한 시기에 해당된다.
    따라서 각 사찰에서는 많은 불사와 함께 불상을 조성하고 있을 때다. 옥련사 불상 역시 비록 조선시대 후기에 속한 불상이긴 하나 그 조성연대를 알 수 있고 또 그 시대의 불상양식의 표준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3. 한국불교태고종 금곡사 금곡사 삼층석탑 (보물 제8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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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13
    금곡사 삼층석탑 (보물 제8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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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13

    석탑으로서는 5m가 넘는 거탑으로 그 형식면에서는 전형적인 고려 양식을 고수하면서도 기단부 구성이나 옥개석의 우동마루 등 일부에서는 약간의 백제계 석탑의 분위기가 가미되어 있다. 조성 연대는 고려 초반기로 추정되며 1988년 석탑 해체 복원 공사 중 3층 탑신에서 세존진신사리 32과가 발견되었다.

  4. 대한불교조계종 무위사 무위사 성보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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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13
    무위사 성보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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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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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3

    건축 강진무위사 극락보전 1430년 1동 국보 제13호 1962.12.20
    조각 강진 무위사 아미타여래삼존좌상 1478년 3존 보물 제1312호 2001.08.03
    회화 강진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1476년 1점 국보 제313호 2009.09.02
    회화 무위사 극락전 백의관음도 조선시대 1점 보물 제1314호 2001.08.03
    회화 무위사 극락전 내벽사면벽화 조선시대 일괄 보물 제1315호 2001.08.03
    석조 강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 946년 1기 보물 제507호 1969.06.16
    석조 무위사 삼층석탑 고려시대 1기 문화재자료 제76호 1984.02.29

  5. 대한불교조계종 백련사 백련사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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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13
    백련사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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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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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3
    백련사 사적비 (보물 제1396호)

    이 비는 대웅전의 북서쪽으로 약 50m 떨어진 빈터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숙종 7년(1681) 5월에 세운 것으로 비문의 백련사의 중수, 원묘국사의 행적과 백련결사에 관한 내용 등이며 뒷면에는 이 비의 건립에 참여한 72명의 승려명과 인명이 음각되어 있다.

    백련사 원구형 부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백련사 내에 있는 부도 중 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나 탑신이나 기단부에 당호 또는 기타 명문이 없어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다. 탑신은 원구형이며 탑신 당산쪽 사방으로 연꽃무늬의 연주문띠를 장식하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특이한 기법이다.

    백련사 대웅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대웅전은 조선 후기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내부에는 목조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앞면 2개의 주두에 용두를 장식하여 단청과 함게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주는 다포식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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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대한불교조계종 쌍계사 쌍계사 소개 557f452dad236da9b3d272e2aa08bb13_1715552754_21.jpg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3
    쌍계사 소개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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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찰산 기슭 한켠에 자리한 쌍계사
    쌍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로서 857년(신라문성왕19)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다. 절 양편으로 계곡이 흐른다 하여 쌍계사라 불렀다고 하며, 진도에 있는 사찰 중 가장 큰 곳이다.


    명부전은 시왕전이 바뀐 이름으로 내부에 지장보살상을 비롯하여 모두 33점의 목조각상이 있다.
    유물로는 진도쌍계사목조삼존불좌상과 시왕전목조지장보살상, 삼층석탑, 부도 2기가 전한다.
    그 가운데 목조삼존불좌상은 1697년 제작되어 1999년 8월 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1호로 지정되었고, 시왕전목조지장보살상은 제222호로 지정되었다.
    삼층석탑은 1920년에 세워진 것이고 부도는 정견(正見)의 것이 1700년, 월하(月下)의 것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이다.


    대웅전
    대웅전은 318년 전에 섬에 세워진 진도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조선후기의 중요한 문화유 산으로서 대웅전의 건립연대는 상량문의 연대가 강희 36년이란 기록이 나와 정확히 1697년에 건립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시왕전
    1993년 보살삼존상을 수리하던 중 도명존자상 속에서 조선 현종 7년(1666년)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으며 17세기 중엽의 조각상을 대표할만하다.

    목조삼존불좌상
    대웅전에 모셔져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이 삼존불 은 가운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 우 협시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는 형태이다. 최근 대 웅전 해체복원관계로 부처님을 임시법당으로 옮기는 과정에 부처님 복장에서 강희 4년(1665년)에 제작되었 다는 조연문이 발견되었다. 17세기 후반의 불상양식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절대연대를 알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불상을 연구하는데 하나의 기준이 되 는 귀중한 작품으로 현재 문화재청에 보물지정을 기다 리고 있는 진도에서 가장 소중한 문화재이다.

    동종
    강희 59년 즉 1720년(경종 1년)에 주조되었으며, 종 꼭대기에 한 마리의 용으로 구성된 용뉴(종을 매 다는 고리)와 반구형 천판(용뉴 아랫부분)을 갖추고 있다. 종신 상대에는 양련(연꽃 꽃잎이 위로 향한 문양)과 15글자의 범자(梵字)가 새겨있고, 그 아 래로 용두가 돌출되어 4좌의 유곽이 있다. 유곽과 유 곽 사이에는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7. 대한불교조계종 서동사 서동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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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13
    서동사 소개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3
    사동마을은 서동사가 있어 '절골'로 부르며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피난민이 서동사에 대피해와 이곳의 울창한 칡넝쿨이 사람들을 보호해 주었다고 하며, 1730년 무렵 목관(牧官) 강필경(姜弼慶)이 부임해와 동헌에 북통을 만들 때 칡넝쿨이 진상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때문인지 서동사에는 오래 전부터 내려온 칡북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원통형의 나무에 구멍을 뚫고 양쪽에 가죽을 데어 만든 이 북은 나무의 원형을 따라 만든 탓인지 북의 모양이 다소 삐뚤어진 타원형의 모습을 하고있다.
    지름이 약 50cm 가량인 이 칡북은 나무의 안쪽을 파고 만든 한 나무라고 해서 굉장히 거대한 칡나무로 만들어 졌음을 알게 한다.
    서동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절에서는 887년 무렵 신라 진성왕때 최치원이 창건했다고 하나 이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으며 현재의 유적와 유물로 볼 때는 조선시대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서동사는 대웅전.종각.요사.건물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약간 경사진 지형을 3단으로 정지하고 두 번째 단에 대웅전과 요사를 배치했다. 이밖에도 경내에는 석조와 용왕상이 있으며 전에는 오층석탑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없어졌다고 한다.

    절에는 또한 상용권공문이라는 책이 전한다. 책 끝부분에 1849년(현종)에 해당하는 연도가 적혀있어 (범자다라니경목판)보다 시기가 빠른 고서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대웅전 안에는 목조삼세불상과 관음상 및 삼세후불탱화.칠성탱화.신중탱화.산신도 등의 불화, 그리고 중종과 1879년 중수 때 감역을 맡았던 최명륜의 영정이 있다.


  8. 대한불교조계종 서동사 이색 칡북 전한 서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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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13
    이색 칡북 전한 서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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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13

    서동사(瑞洞寺)는 화원면 금평리 573번지 사동(寺洞)마을의  운거산(雲居山)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대흥사의 말사이다. 사동마을은 서동사가 있어 ‘절골’로 부르며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피난민이 서동사에 대피해와 이곳의 울창한 칡넝쿨이 사람들을 보호해 주었다고 하며, 1730년 무렵 목관(牧官) 강필경(姜弼慶)이 부임해와 동헌에 북통을 만들 때 칡넝쿨이 진상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때문인지 서동사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칡 북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원통형의 나무에 구멍을 뚫고 양쪽에 가죽을 데어 만든 이 북은 나무의 원형을 따라 만든 탓인지 북의 모양이 다소 삐뚤어진 타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름이 약 50cm 가량인이 칡 북은 나무의 안쪽을 파고 만든 나무라고 하여 굉장히 큰 칡나무로 만들어 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서동사의 창건과 관련 887년 무렵 신라 진성왕 때 최치원이 창건했다고 하나 이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으며 현재의 유적과 유물로 볼 때는 조선시대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 대웅전은 1779년(정조 3)에 복원된 건물로 1870년 의윤, 정기, 진일 등 3인의 스님이 발원하여 중수하였으며 최근 년에는 정랑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후 요사채, 칠성각, 천불전, 화장실 등을 개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9. 대한불교조계종 서동사 서동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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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13
    서동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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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13

    조선시대 후기 이절의 역사는 절에 보관되었던 범자다라니경(梵字陀羅尼經)및 1870년(고종7)의 <서동사중수서>를 통해 연혁을 살펴볼 수 있다. 다라니경판은 1858년(철종9)에 만들어졌는데 끝부분에 보면 월여(月如)스님이 1858년 9월 화원목장(花源牧場)의 서동사에서 수명과 복덕을 기원하는 「다라니경」을 조성, 간행한 것으로 되어있다. 19세기 후기에 들어와서는 <서동사중수서>를 통해 1870년(고종7)당시 대웅전의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1924년, 1945년과 1946년에 청학스님이 대웅전을 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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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대한불교조계종 서동사 서동사 건축물과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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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13
    서동사 건축물과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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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13

    현재 서동사는 대웅전·종각·요사 건물과 함께 최근 복원된 누각 등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약간 경사진 지형을 3단으로 정지하고 단에 대웅전과 요사를 배치했다. 이밖에 경내에는 석조와 용왕상이 있으며 전에는 오층석탑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없어졌다고 한다.
    절에는 또한 <상용권공문(常用勸供文)>이라는 책이 전한다. 책 끝부분에 1849년(현종15)에 해당하는 연도가 적혀있어 <범자다라니경목판>보다 시기가 빠른 고서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문화재로는 서동사 목조삼존불 좌상 보물 1715호와 전라남도 기념물 제245호 서동사 동백나무 비자나무숲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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