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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불교영산성지
    원불교영산성지 영산성지 영산 정관평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7
    영산성지 영산 정관평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7

    명칭 : 영산 정관평
    번호 : 성적 제6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 180-1, 2-2
    지정일 : 원기 85년(2000) 7월 6일

    소태산 대종사가 제자들과 함께 원기 3년(1918) 5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약 1년 동안 길룡리 앞바다 버려진 갯벌을 막아 간척한 농지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을 이룬 후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저축조합을 결성하고 그 자본금으로 바다를 막는 간척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당시에는 구호농장九虎農場으로도 불렸는데 구인제자가 이루어낸 농장이란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구호동이란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기 19년(1934) 회보에 ‘정관평’이란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소태산 대종사 당대에도 정관평이란 이름이 함께 통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관평이란 명칭은 중국 당나라 태종의 연호 ‘정관’에서 따온 것으로 평화 안락한 지상 극락을 건설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정관평 간척 사업은 두 차례에 이루어졌는데 2차 간척사업은 후계 종법사인 정산 종사가 원기 40년(1955)부터 3년에 걸쳐 2만 7천 4백 82평의 간척답을 조성한 것입니다.

    정관평은 초기교단의 경제적 기반을 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소태산 대종사와 구인 제자가 자작자급, 주경야독, 영육쌍전의 창립정신을 이끌어 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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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원불교영산성지
    원불교영산성지 영산성지 영산 구간도실터
    작성자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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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7
    영산성지 영산 구간도실터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7

    명칭 : 영산 구간도실터
    번호 : 성적 제7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 산 11
    지정일 : 원기 85년(2000) 7월 6일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후 제자들과 함께 간척사업을 진행하면서 집회 장소로 이씨제각과 강변주점을 빌려 사용해 오다가 장소가 협소하고 내왕이 불편하므로 이를 해소하기 위 해 제자들과 함께 직접 지은 교단 최초의 건물입니다.

    원기 3년 음력 10월에 옥녀봉 아래에 터를 정한 뒤 썰물 때는 갯벌에 나가 간척사업을 하고 밀물 때는 나무를 베고 땅을 녹여 지은 집입니다. 초가지붕에 가로 세 칸 세로 세 칸으로 아홉 칸 방이 있어서 도(道)를 공부하고 기도하는 집이라는 의미를 더하여 구간도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소태산대종사는 그 상량에 ‘사원기일월 직춘추법려 송수만목여춘립 계합천봉세우명梭圓機日月 織春秋法呂 松收萬木餘春立 溪合千峯細雨鳴’이라고 썼고, 기둥에 ‘대명국영성소 좌우통달 만물건판양생소大明局靈性巢 左右通達 萬物建判養生所’라는 글귀를 써 붙여 그 포부를 드러 냈습니다. 간척사업이 마무리 될 무렵 전국 각지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소태산 대종사는 “개벽을 재촉하는 상두소리니 바쁘다 어서 방언 마치고 기도드리자.”라며 제자들과 함께 사무여한 무아봉공의 정신으로 기도를 올려 법계의 인증을 받는 법인성사를 이루었습니다.

    구간도실은 원기 8년(1923) 지대가 낮고 장소가 협소하여 대중 모임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에 따라 영산출장소로 옮겨졌으며, 건물명도 영산원으로 변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구간도실이 있었던 자리에는 구간도실과 구인제자를 상징하는 기념물이 조성되어 순례객들의 참배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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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원불교영산성지
    원불교영산성지 영산성지 소태산 대종사 탄생가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7
    영산성지 소태산 대종사 탄생가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7

    명칭 : 소태산 대종사 탄생가(少太山大宗師誕生家)
    번호 : 성보 제1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성지로 1279-65
    지정일 : 원기 85년(2000) 7월 6일

    원불교를 창시한 교조敎祖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1891~1943)가 1891년 5월 5일 태어난 곳이자 1905년경까지 거주하며 유년기를 보낸 곳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며 하늘의 이치와 인간사에 대한 의심을 발하였고 산신령을 만나기 위해 삼밭재를 오르내리며 5년간 기도 생활을 하였습니다.

    소태산 대종사가 1905년 구호동으로 이사한 뒤에도 한동안 사람이 거주했으나 어느 해 봄 뜻하지 않은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습니다.
    한때 구인제자 중 한 명인 칠산 유건 종사가 집을 짓고 살았으나 원기 44년(1959) 교단에서 이를 인수해 관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원기 66년(1981) 5월 19일 성지 장엄사업의 일환으로 1차 복원하여 건물이 노후화됨에 따라 원기 104년(2019) 4월 24일 2차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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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원불교영산성지
    원불교영산성지 영산성지 대각전
    작성자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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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7
    영산성지 대각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7

    명칭 : 영산성지 대각전(靈山聖地 大覺殿)
    번호 : 성보 제2호(등록문화재 481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성지로 1357
    지정일 : 원기 85년(2000) 7월 6일

    원불교 신앙의 대상이자 수행의 표본인 법신불 일원상이 모신 영산성지의 중심 건물입니다.
    정면에는 일원상을 봉안하였으며 그 왼쪽으로는 소태산 대종사의 진영을 모셨습니다.

    함석지붕을 올린 일본식 목조 건물로 내부는 기둥을 세우거나 공간을 구획하지 않고 탁트인 공간으로 구성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직접 감역해 지은 강당형 법당으로 건축 당시 만해도 영광 군내에서 가장 큰 건물로 꼽혔습니다. 원기 21년(1936) 12월 준공하여 법회 및 강연 등 종교 집회 장소로 활용하였으며, 현재는 원불교 영산성지를 찾는 순례객들의 참배 및 훈련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원기 72년(1987) 아시아 종교인평화회의 참석자들의 내방을 앞두고 한 차례 보수를 하였으나, 원기 84년(1999) 성지장엄사업의 일환으로 전면 재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원기 96년(2011) 10월 19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8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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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원불교영산성지
    원불교영산성지 영산성지 영산원
    작성자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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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7
    영산성지 영산원
    작성자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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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7

    명칭 : 영산성지 영산원(靈山聖地 靈山院)
    번호 : 성보 제3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성지로 1357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1891~1943)가 대각을 이룬 후 첫 사업으로 저축조합을 설립하고 그 자산으로 창립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간척사업(일명 방언공사)을 하면서 관리사무소와 법회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원기 3년(1918) 제자들과 함께 옥녀봉 아래에 지은 원불교 최초 건물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버려진 개펄을 정관평 옥토로 바꾸는 간척사업을 이루었으며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구원하겠다는 기도를 올려 법계의 인증을 얻는 법인성사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지대가 낮은데다가 공간이 협소하여 많은 사람들이 내왕하기가 불편하다는 의견에 따라 원기 8년 현재의 장소로 이축하였습니다.
    옥녀봉 아래에 있을 당시에는 구간도실九間道室로 불렸으나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3천 년 전 석가모니불의 영산회상을 재현한다는 의미로 '영산원靈山院'이라고 하였습니다.

    원기 9년(1924) 원불교 중앙총부가 익산에 건설되자 인근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영산학원 활용되었으며 영산학원은 오늘날 영산선학대학교의 발전했습니다.
    원기 95년(2010) 전면 개보수 공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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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원불교영산성지
    원불교영산성지 영산성지 옥녀봉 제명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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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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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7
    영산성지 옥녀봉 제명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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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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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7

    옥녀봉 제명바위(玉女峰 題名岩)
    번호 : 성보 제4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 산 5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깨달음을 얻은 후 그 첫 사업으로 제 자들과 함께 저축조합을 설립한 후 간척사업으로 원불교 창립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제명바위는 간척사업으로 2만 6천여 평의 간척답을 마련한 후 그 준공을 기념하여 원기 4년(1919) 3월 세운 원불교 최초의 금석문金石文이자 가장 오래된 기록문記錄文입니다.
    칠산 유건 종사의 제안으로 간척답 정관평이 내려다보이는 옥녀봉 중턱 3m 높이의 자연석 바위에 시멘트를 발라가로 90cm 세로 45cm의 판석을 만든 후 팔산 김광선 종사의 글씨로 간척사업 참가자들의 이름을 음악으로 새겼습니다.

    원기 75년(1990) 세월의 흐름에 따라 시멘트가 마모되어 비문이 희미해져 감에 따라 그 아래쪽에 글을 탁본해 새긴 모형비를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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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원불교영산성지
    원불교영산성지 영산성지 학원실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7
    영산성지 학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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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17

    명칭 : 영산성지 학원실(靈山聖地學院室)
    번호 : 교보 제1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 2-2번지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원기 8년(1923) 10월(음), 옥녀봉 아래 있었던 구간도실을 범 현동 현 위치로 옮겨 영산원을 지으면서 함께 건축한 집입니다. 8칸 2동(식당채와 학원실)의 ㄱ자형 초가 우진각지붕으로 지었습니다. 학원실은 원기 21년(1936) 12월 영산 대각전이 건축되기 직전까지 영산지역의 교도들의 법회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원기 17년 정산 종사가 영산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인근 청소년들과 교단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영산학원단'을 결성할 때 교실과 숙소로 사용되면서 '영산학원실靈山學院室'로 불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산학원실은 학원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영산지역 교도들의 동ㆍ하선의 장소로도 사용되었으며, 원기 41년(1956) 정관평 재간척사업이 시작되자 일부 공간이 방언 공사 사무실로 3년간 사용되었습니다.
    원기 49년 영산선원이 개원을 하면서는 선원생들의 교실 및 기숙사 등 교단의 인재양성 기관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영산학원실은 건축 당시에는 초가였으나 관리상의 문제로 원기 89년(2004) 3월 아영강판지붕으로 개조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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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원불교영산성지
    원불교영산성지 영산성지 정관평 방언사무소터
    작성자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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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7
    영산성지 정관평 방언사무소터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7

    명칭 : 정관평 방언사무소터
    번호 : 교적 제1호
    소재지 :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 170, 170-1
    지정일 : 원기 91년(2006) 5월 9일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 2년(1917)에 8인 제자와 더불어 저축조합을 창설한 후 조합원들이 저축한 자금과 가산을 정리하여 마련한 사재와 일부 차용금으로 바탕으로 숯을 사들여 적지 않은 이득을 보았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목탄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원기 3년부터 길룡리 해안 갯펄을 막아 농토로 만드는 대규모 간척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영촌마을 앞 개펄가에는 길룡리 인근에서 나오는 숯이며 장작, 연초 등을 거룻배에 싣고 법성포에 드나드는 작은 나루와 강변주점江邊酒店이 있었는데, 소태산 대종사는 이 강변주점을 집회 장소와 방언공사 임시사무소로 이용하였다. 이 방언공사 임시사무소에서는 사타원 이원화가 머물며 간척사업에 참여한 인부들에게 새참 등 먹거리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간척사업을 하면서 임시사무소로 쓰던 강변주점은 좁고 불편하였으므로 원기 3년(1918) 옥녀봉 아래에 조합실 건축을 건축하고 방언관리소를 이사했습니다. 방언공사가 마무리 된 후에도 와탄천에서 들어오는 바닷물이 길룡천까지 드나들었으므로 나룻배들이 다녔으나 원기 41년(1956) 정관평 재방언공사를 착공하면서 길룡천 물길을 옥녀봉 아래로 돌리게 되자 강변나루는 자연히 폐쇄되었습니다. 방언사무소 터는 그 후 길룡리 170번지(하천)와 170-1번지(도로)로 분할되어 재단법인 원불교로 소유권이 이전되었으나 그 후 도로가 확장되면서 도로에 편입되었습니다.

    교단에서는 원기 86년 강변주점 터 옆 171-1번지 답을 매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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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쾰른교당
    쾰른교당 게스트하우스 이용 안내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7
    게스트하우스 이용 안내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7

    독일 일원원불교선센터를 통해 은혜로운 법연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청정지역 일원선센터는 선센터내에 아름다운 산책로와 흐르는 시냇물, 이름모를 새들이 방문객을 반겨드리는 곳입니다.
    가까이 종이박물관과 아름다운 농장이 이웃해 있으며, 1키로미터 거리에 생활용품매장 ALDI와 Lidl, DM등이 있고 3키로미터 거리에 시청청사와 재래시장(주2회)이 열리는 곳입니다.
    청정한 공기와 아름다운 숲으로 별장과 같은 호텔급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여 방문객들의 만족도가 높으며, 유럽미술계의 진출을 원하는 한국인들을 위한 갤러리도 운영합니다.
    독일에서의 유학을 원하는 청소년들의 유학 및 생활지도와 정착을 위한 비자업무를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필요한 시설 이용시 메일이나 전화상담을 먼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0. 쾰른교당
    쾰른교당 원불교쾰른교당의 역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7
    원불교쾰른교당의 역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7

    재단법인 일원 원불교선센터, 원불교쾰른교당은 원기 91년 11월 25일(?) 원불교중앙총부 원의회를 통해 설립승인이 되었습니다.
    승인 당시는 쾰른교당이 아니고, 원불교쾰른선교소였고 올해부터 선교소를 교당으로 통칭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불교쾰른교당은 독일에서 4번째 교화거점으로 베르기시 글라드바흐라는 곳에 위치했으며,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한국선수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교적 조용하고 독일인 위주의 안정된 생활공간이고, 지역은 쾰른 바로 옆 지역이며, 대부분의 생활권이 쾰른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쾰른은 2008년 독일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앞서가는 도시로 선정되었으며, 교육 예술면에서도 지역민들이 대단한 자긍심을 갖고 사는 곳입니다.
    또한 불교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예술면으로는 쾰른 멧세에서 독일에서 판매되는 미술품의 2/3를 소화시킨다고 하니 예술장 또한 거래가 활발한 곳입니다.
    교당이 위치한 곳은 시내에서 5분 이내의 거리이며, 중간에 대형마트가 있어 장보기가 쉽습니다, (차로 2분 거리) 교당은 1천2백여평 대지에 연건평 173평의 4층 건물이며, 교당주변으로 4천여평의 하천부지가 딸려 있고 하루에도 수십명씩의 산책객과 운동하는 사람들이며 승마객들이 교당 마당을 질러 다닙니다.
    하천부지는 매입당시 개발제한구역이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부분적으로 개발제한이 풀려 일부의 땅은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대지로 전환되었습니다.

    교당 구조는 1층은 갤러리 <아름다운 하모니를 위하여- fur schone Harmonie>로 큰 방 1개와 작은 방 개로 구성되어 있고, 남,녀 화장실과 차를 마시며 대화할 수 있는 작은 방이 있습니다.
    2층은 민박시설입니다. 본래 7세대가 살았었던 가옥이어서 방이 많은 곳을 경제자립을 위해 민박시설로 갖추고 세면장이 딸려있는 2인실 3개, 1인실 2개와 별실(저희들은 교단 어른을 모실 귀빈실로 생각함)이 따로 있습니다.
    3층은 소법당과 사무실 독일식 주방과 서재, 남, 녀 화장실이 있고, 별채쪽으로 교무방이 두개 있습니다.
    그리고, 헛간이었던 곳을 완전히 보수하여 매우 훌륭한 한식주방으로 갖추었습니다.
    4층은 4개의 방을 터서 만든 대법당과 유학생을 유치하는 방 2개 세면장, 작은 마루 등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150면 된 건물이라 외벽의 두께는 80센티미터이며 보수공사를 하며, 수도, 전기, 보일러 등을 완전히 새로 설치하면서 많은 비용과 건축자재가 들었습니다.
    이 교당을 시작한 것은 프랑크푸르트교당에서 이명희 교무를 연원으로 하여 원불교에 입교한 김정희(법명 김자유인)교도의 발의로 시작되었습니다.
    갑작스런 교단의 명으로 독일교화를 시작한 이후 3년만에 독일교화를 접은 이명희 교무에게 교당을 마련할테니 와서 설교하고, 교화만 하면 된다는 간곡한 청과 현재의 교당건물이 부동산 매물로 나왔을 당시 입지조건이 매우 유리하여 상황을 파악하러 왔다가 담당변호사와 계리사 등이 재단법인으로 하면 된다며 설립허가를 추진한 결과 3주만에 허가 가능성이 확인되어 교운으로 열리는 일을 외면할 수 없어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오래된 건물이어서 준문화재에 해당되니 정부로부터 수리비를 지원받을 것이라는 김자유인의 설명과 독일 현지 은행의 대출이 가능하다며 추진을 원하는 청에 의해 당시 근무하던 원불교 서울시민선방과 이원조교무가 근무하던 원불교구산교당에서 합력하여 건물 계약금과 변호사 수임료, 건물공사비 일부를 마련하였으며, 현지에서 비용을 마련하기로 하였던 김자유인은 여러가지 여건상 경비마련이 여의치 않아 공사기간동안 열심히 육신으로 봉공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재단법인 승인시 기본적인 유지를 위해 김자유인이 연금으로 받는 1천유로(150만원상당)를 집세로 지불하며 교당에서 지내기로 하였던 바 매월 집세로 지불한 1천유로는 1년간 건물미상환 이자로 지불하며 보수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연원교당의 지원이나 교도가 없이 교당건물보수공사를 진행하는 일이 쉽지 않았으나 조치원교당 이원조 교무의 방송설교집과 경전봉독 CD, 정전봉독 CD 등의 판매수익금과, 이와 인연하여 특별성금을 주시는 호법인연들의 합력으로 교당보수공사를 원기92년 3월-11월까지 하였으며, 원기93년 4월14일-5월13일까지 마무리 공사를 하였습니다.

    매입당시 건물과 부동산 비용은 32만 유로였으며, 5만유로를 계약금으로 지불하고, 27만유로에 대한 상환기간은 3년, 현재 매월 1천유로의 이자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전기발전식 보일러 설치 및 인건비를 포함한 건물보수비는 4억정도이며, 현재 인건비 3만4천유로와 부동산 매입대금 27만유로를 지불하지 못한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