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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7교구 금산사 금산사 환성지안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6
    금산사 환성지안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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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성 지안 진영, 조선 1799년, 비단에 색 122×81.7 통도사성보박물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50-3호)>


    스님의 성씨는 정(鄭)씨로서 춘천 사람이며 조선조 현종 5년(康熙 3, 1664)에 태어났다. 15세에 미지산(彌智山) 용문사(龍門寺)로 출가하여 머리 깎고 쌍봉 정원(雙峰淨源)에게 구족계를 받은 뒤 17세 되던 해에 편양 문손인 월담 설제月潭雪霽(1632-1704)에게 가르침을 구했다.

    월담은 한눈에 환성의 그릇 됨됨이가 범상치 않음을 알아차리고 마침내 의발(衣鉢)을 환성스님에게 전해준다. 헌헌장부로 성장한 환성은 용모부터 특이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골격이 말쑥하고 엄숙하였으며 음성은 맑고 그윽하여 신비감을 자아냈다. 말은 조리가 분명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간결하였으며 얼굴 빛 역시 늘 온화함을 잃지 않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經典)들을 깊이 연구하느라 침식(寢食)을 잊기 예사였다. 27세 되던 해에 환성은 모운진언(幕雲震言) 대사가 금산(金山: 금릉)의 직지사(直指寺)에서 법회를 개설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간다. 모운(1622~1703)은 부휴(浮休)의 고재(高弟) 벽암(碧岩)의 제자로 당시 삼남(三南)에 이름을 떨치던 화엄의 대종장(大宗匠)이었다. 모운대사는 환성을 보자 크게 기뻐하며 비록 자신보다 20여 년 연하(年下)의 선지식이었지만 그를 공경해마지 않았다. 모운대사는 대중 수백 인이 모인 자리에서 환성스님에게 강석(講席)을 물려주며 고별 법어를 마치고 “내 이제 사자좌를 거두고 떠나노니 너희들은 스승의 예로써 이 스님을 섬기도록 하라.”는 당부의 말을 남긴 뒤 남모르게 훌쩍 떠나버렸다.

    모운대사가 강석(講席)을 물려주고 다른 산으로 떠난 뒤 환성스님은 대중들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마침내 설법을 시작하였다. 종으로 횡으로 주도면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치 강물이 쏟아져 내리듯 거침없는 환성의 설법에 대중들은 막혔던 가슴이 뚫리듯 시원하게 의문점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모운 진언대사로부터 강석을 물려받아 당시의 대강백이 된 환성 지안대사는 영조 1년(乙巳, 1725) 금산사(金山寺)에서 화엄대법회를 여니 1천4백 명의 대중들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 역사적 집회는 당시 조정을 긴장케 함으로써 뒷날 환성대사가 귀양 가서 죽도록 하는 비극의 불씨가 된다. 환성대사의 고난은 개인적 고난이 아니라 당시 혹독한 탄압을 받고 있던 불교 전체의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제주도에 유배된 지 7일째 되던 7월 7일, 환성대사는 중생구제를 위한 원대한 서원(誓願)을 펴보지 못한 채 흘연 열반에 든다. 누려온 나이 66세, 법랍 51세였다. 환성대사의 열반은 곧 국가적 손실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듯한 사건이 속출하였다. 3일 동안 한라산이 울고 바닷물이 끓어오르는 등 이변을 보이자 제주도 사람들은 환성대사를 삼성(三聖)의 예언에 나오는 바로 그분이라고 단정하였다.

    환성당 지안 진영 喚醒堂 志安 眞影(1664-1729)은 뒷면에 제찬과 제작연대가 적혀 있어 가경 4년(1799) 여름에 옥인玉仁이 그렸음을 알 수 있다. 화면 중앙에 위치한 스님은 의자에 앉아 우측을 바라보았다. 왼손에는 금빛의 용머리 장식이 있는 불자를 세워 들고 오른손으로는 불자의 수술을 가볍게 쥐고 있다. 의자 등받이 좌우 끝에도 용머리 장식이 있고 등받이 부분은 금문양이 있는 녹색 천이 드리워져 있다.『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綱要』는 숙종 15년(1689)에 환성지안이 선종오가의 강요를 여러 문헌들에서 발췌하여 편집한 책이다. 북해 함월北海涵月이 쓴 서문에 의하면, 오가五家, 즉 임제종臨濟宗·운문종雲門宗·조동종曹洞宗·위앙종潙仰宗·법안종法眼宗의 사상이 여러 문헌에 산재해 있어 살피기 어려우므로 환성 지안이 문헌 속의 요의要義를 채집하여 편찬하였으며, 자신이 틀린 부분을 교정하고 빠진 것을 보충하였다고 한다. 함경도 안변 석왕사釋王寺에서 간행되었다.

    환성시집 喚醒詩集은 환성 지안의 시문집이다. 지안은 자가 삼낙三諾, 호가 환성喚醒이며, 월담 설제月潭雪霽의 법을 받았다. 이 시집은 1권1책의 목판본이며 내용은 모두가 시이다. 권두에 오봉鼇峰의 서序가 있고 권말에 해원海源이 찬한 행장이 있다. 오언절구 59수, 칠언절구 61수, 오언율시 16수, 칠언율시 10수, 끝에는 호암虎岩과 풍담楓潭의 임종게臨終偈 3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영조 27년(1751) 안변 석왕사釋王寺에서 개판하였다. 이들 시는 모두 선의 경지에서 속세의 먼지가 탈락된 정신세계를 음미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스님의 시문집이 많지만 선시禪詩로서는 이 시를 능가하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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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문오종강요 禪門五宗綱要> / <환성시집 喚醒詩集>

  2.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7교구 금산사 금산사 용명당 각민대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6
    금산사 용명당 각민대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6

    용명당 각민대사는 1846년(조선헌종 朝鮮憲宗 12年) 8월 9일 전주에서 아버지 동래정씨 석노와 어머니 청송 심씨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약관의 나이에 영주 정토사 지진장노(智眞長老)에게 출가(出家)하여 승려가 되었다. 조선 말(朝鮮末) 국내외 사정이 매우 혼란할 때 대사는 금산사 주지로 재직하는 동안 안으로는 금산사의 가람수호를 위해서, 그리고 밖으로는 호남 도승통(都僧統)을 이곳 금산사에 두어 호남지역 전체의 불교발전을 도모하는 등 그의 열과 성의를 다하였다.

    그 무렵 인근 지역에는 금광의 불법채굴이 크게 유행하였다. 1900년 대한제국(大韓帝國) 광무(光武 4年)에는 금산사 사리탑 아래까지 채광(採鑛)을 하고자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사는 지방판서(地方判書)와 서울의 중앙내자원(中央內臟院)에 경내의 불법 채광에 대한 그 부당성을 널리 알리고 진정(陳情)을 올리는 등 혼신의 노력으로 가람을 수호하고자 하였다. 마침내 1901년(光武 5年) 12월 말에도 공식적으로 불법 채광 금지령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1902년(光武 6年) 1월 1일 금산사로 모여 크게 소란을 피우면서 채광을 계속하려고 하였다. 대사는 이 소란꾼들의 손에 의해서 현재의 경내 가운데 잣나무 아래에서 57세의 나이로 불의에 입적하였다.

  3.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7교구 금산사 금산사 창건과 역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6
    금산사 창건과 역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6

    금산사는 백제법왕 원년(599)에 창건되었다.

    통일신라의 의적화상은 당나라 현장문하에서 유학하고 금산사에 돌아와 25부 70여권의 방대한 유식사상의 저술을 남겼다. 숭제법사와 진표율사를 거쳐 고려 혜덕왕사로 이어지면서 유식학 법상종의 종주로 자리매김하였다.

    정유재란 후, 1635년 수문대사가 금산사를 중건하면서 미륵과 화엄의 2원 체계로 도량을 정비하였다. 조선영조 원년 환성 지안대사는 전국에서 모여든 1,400여 스님이 운집한 가운데 화엄산림을 개최하였다. 근래들어 월주스님에 의해 미륵바로알기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대사회 활동을 통해 자비와 보살행을 몸소 실천하는 사찰임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금산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어 1400여 년의 역사를 이어 오늘날까지 법등을 밝혀온 유서 깊은 명찰이다. 금산사 일원은 사적 제49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호남평야 가운데 우뚝 솟은 모악산 서쪽 자락에 위치해 있다. 정유재란 때 왜군의 방화로 모든 건물과 산내의 40여 개 암자가 완전히 소실되는 등 수난을 겪었으나 이후 많은 문화재가 조성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1년(599년)에 나라의 복을 비는 자복사資福寺로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진표율사眞表律師가 금산사의 숭제법사崇濟法師에게 출가했다는 기록과 통일신라 초에 활동한 의적義寂(681-?) 스님이 당나라 현장스님에게 유학하고 돌아와 금산사에 머물며 25부 7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는 기록들을 통해 당시 금산사가 창건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금산사가 대사찰의 면모를 갖춘 것은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가 주석하며 시작되었다. 진표율사는 미륵전을 짓고 미륵장륙상을 조성하였으며 해마다 단壇을 열어 법시法施를 널리 베풀었다.

    후삼국시대에 금산사는 다시금 역사서에 등장한다. 후백제의 군주 견훤이 아들 신검 등에 의해 금산사에 감금되었다가 탈출하여 왕건에게 투항하였다는 내용이다. 금산사에는 ‘견훤성문’으로 불리는 개화문과 석성 등 견훤과 관련된 유적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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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사사적 金山寺事蹟 History of Geumsansa Temple, 조선 1705년, 33.3×21.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백제 : 이 세상의 도솔천 모악산 금산사
    중관 해안中觀海眼이 쓴 『금산사사적』(1635) 에는 “백제 법왕 1년(599)에 법왕이 즉위하여 살생을 금지하는 법을 발표하고, 이듬해(600)에 금산(사)에 38명의 승려를 득도시켰으며, 또 왕흥사王興寺를 창건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진표율사가 금산사의 숭제법사에게 출가했다는 기록이나 통일신라시대 활동한 의적스님이 금산사에 주석했다는 기록을 보면 금산사가 백제시대에 창건되었음은 확실하다.

    통일신라 : 진표율사, 미륵신앙의 토대를 세우다
    진표율사는 신라 경덕왕 대에 활동한 스님으로 사실상 금산사의 창건주라고 할 수 있다. 진표율사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진표전간眞表傳簡」과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嶽鉢淵藪石記」, 『속고승전續高僧傳』 등에 비교적 상세하게 남아 있다.

    고려시대 : 법상종의 중심도량이 되다
    법상종法相宗은 유식사상唯識思想과 미륵신앙을 기반으로 성립된 종파로, 고려시대 11세기 초 목종과 현종 이후 왕실과 관련을 맺으면서 크게 융성하였다. 이 시기에 법상종의 대표적인 사찰인 금산사 또한 중흥하였다. 혜덕왕사 소현慧德王師 韶顯(1038-1096)이 금산사의 주지로 취임하면서 금산사는 최대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혜덕왕사가 금산사에 주석하는 동안 남아 있는 법당을 모두 보수·중축하는 것은 물론 새롭게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석조물인 방등계단, 석련대, 노주 등이 이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산사의 사역이 대사구大寺區, 봉천원구奉天院區, 광교원구廣敎院區의 세 구역으로 나뉘게 된 것도 모두 혜덕왕사의 중창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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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사 봉천원 추정지역 출토유물 金山寺 奉天院 推定地域 出土遺物 고려, 수막새 지름 15, 금산사성보박물관>


    조선 : 자비심으로 나라를 지켜내다
    조선시대 금산사는 1492년 세조의 서자 덕원군 이서李曙가 금산사를 불사한 기록이 있어 당시 왕실과 연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조 25년(1592)에 발발한 임진왜란은 7년에 걸쳐 조선의 국토를 황폐화시켰다. 호남지역 또한 의승군이 집결하였는데, 그 중심 사찰이 금산사였다. 호남의 의승군을 이끈 뇌묵 처영雷黙處英은 금산사에서 출가하였고 후에 묘향산으로 가서 서산대사에게 선종의 종지宗旨를 전수받았다. 뇌묵 처영대사는 사명대사 유정과 함께 서산대사의 2대 제자로 일컬어진다. 총섭의 지위를 받고, 후에는 ‘국일도대선사부종수교보광현랑뇌묵國一都大禪師扶宗樹敎葆光玄朗雷黙’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이 시기 조정에서 전국의 사찰 가운데 선교16종 규정소를 설치하였는데, 금산사는 전라우도 규정소로 지정되어 도내의 여러 사찰을 관할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라좌도와 전라우도를 관할하는 규정소로 확대되었다.
    인조 13년(1635)에 이르러서야 금산사는 낙성을 보게 되었는데, 오늘날 우리가 보는 금산사 가람은 이때 복원된 것이 대부분이다. 사찰 중건과 함께 당시 주지였던 지훈 스님과 간고 천택스님, 용면 응지스님 등이 주선하여 중관 해안스님으로 하여금 1635년 11월 『금산사사적』을 편찬하게 하였다. 현재 필사본으로 전하고 있는 『금산사사적』은 재건 공사와 함께 자료를 수집하여 작성한 것이다. 또한 조선 후기 금산사에는 호남불교의 중심 사찰이라는 위상에 걸맞는 스님들이 주석하였다. 대표적인 스님으로 백곡 처능 선사, 남악 태우 대사, 환성 지안대사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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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사도, 허련 許鍊,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21×26.7 전북대학교 박물관>


    근현대 : 일제하 금산사의 수난과 극복
    1935년 3월 큰 화재로 미륵전 본존불이 전소되었다. 당시 공모전이라는 파격적인 방식(불모 일섭스님 등 당대 유명 작가 5인 응모)으로 진행되었는데 일본 동경대에서 수학하고 갓 돌아온 김복진씨가 당선되어 복원불사가 시행되었다. 김복진은 서양조각을 공부한 근대 조각가이다. 그는 새로운 재료인 석고를 이용하면서도 전통을 계승한 미륵대불을 완성하였다. 1961년에 금산사의 주지로 부임한 태공 월주 스님은 미륵전을 비롯하여 많은 불사를 이루었고 여러 스님들의 노력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62년 조계종 통합종단이 만들어지면서 17교구의 본사로서 조계종의 종헌과 종지종풍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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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금산사 전경(상단 왼쪽부터 금산사전경, 미륵전, 미륵삼존불(1935년 화재 전)
    대적광전(화재 전), 대적광전 오여래육보살(화재전), 방등계단과 오층석탑)

  4. 금산사 템플스테이 금산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5
    금산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5

    숙소 : 2인실(16실), 3~4인실(5실)
    부대시설 : 화장실(비데), 샤워부스, 에어컨, 온수기 숙소마다 설치, 참가자 전용 다실 제공, 정수기, WiFi-Free
    참가자 준비물 : 세면도구(수건), 물병, 운동화. *비누, 치약 제공
    주변관광지 : 김제 벽골제, 전주 한옥마을, 진안 마이산, 임실 붕어섬, 부안 채석강

    자율 휴식형
    프로그램: 예불(자율), 스님과 차담
    선택 프로그램 : 단주 만들기, 108염주 만들기(재료비 별도), LED연등만들기
    일시 : 매일
    참가비 : 성인 6만원. 중고생 5만원, 초등생 4만원, 유아 2민원

    주말 체험형
    프로그램: 108배, 명상, 포행, 스님과 차담, 탁본, LED연등만들기, 예불(자율), *계절 및 사찰일정에따라 변경될 수 있음.
    일시: 매주 주말
    참가비: 성인 8만원, 중고생 6만원, 초등생 5만원, 유아 2만원

    당일형 프로그램
    단체 15인 이상 예약시 가능
    선택 프로그램 : 사찰 문화해설, 스님과의 차담, LED연등만들기, 108염주만들기, 점심공양
    일시: 화~일(전화예약)
    참가비 : 20,000원 부터~(체험에 따라 상이)

    특별이벤트 : 내비둬 콘서트

    프로그램 : 스님과 뮤지션이 함께하는 토크콘서트
    자율휴식형 템플스테이와 연계 운영
    일시: 연간 4회 개최(사전 공지)

    입실시간은 참가신청일 오후3시까지이며, 3시이전에는 전일 참가자가 사용한 방사를 청소하고 정리하는중이오니 너무 일찍 오셔도 방사배정이 어려울수있는점 양해바랍니다. 퇴실시간은 참가 마지막날 오후 1시까지 입니다. 일정이 있으신분은 그 이전에도 방사정리 후 퇴실가능합니다. 준비물은 여분의 옷가지와 속옷, 세면도구, 수건, 편한 운동화(산행하실분), 개인물병과 비상약품등입니다. 차량으로 오시는분은 매표소에 템플스테이 참가자라고 말씀하시면 무료통과 가능합니다. 일주문 지나서 우측에 템플스테이 건물이 있으며 주차장은 위쪽으로 10여미터만 가면 넓은 공터가 있으니 그곳에 주차하고 들어오시면 됩니다. 템플스테이 체험관 대문은 안쪽에서 쉽게 열고 들어오실수있으며 위쪽 사무실 건물로 오시면 체온확인후 신청서 작성 및 상담후 수련복 지급후 방사안내해드립니다. 세면도구, 수건, 옷가지, 물통등은 꼭 챙겨오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템플스테이는 남녀노소 누구나 휴식을 위해 이용하는 장소입니다. 소음 및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위는 자제하시기 바라며, 가급적 9시이후에는 방안에서 전화통화 및 대화를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음주 및 흡연, 고성방가로 인한 문제야기시 퇴실조치되실수있음을 인지하여 주시기바랍니다

  5. 금산사 템플스테이 금산사 템플스테이 시설 안내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5
    금산사 템플스테이 시설 안내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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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통도사성보박물관 불교미술사학회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5
    불교미술사학회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5

    불교미술사학회는 한국의 불교미술사 관련 회화·조각·건축·공예·보존수복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20-40대 신진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약 400여 명의 회원들이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으며, 년 2회(4월, 11월) 발표의 장을 개최하고, 연구 결과의 산물인 학회지 『불교미술사학』을 년 2회(3월, 10월) 발간하고 있습니다.
    학연, 지연, 인맥 등에 구애없이 불교미술사를 사랑하는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열띤 발표와 토론을 통해 불교미술사학 발전을 위한 장을 마련하는 열린 학회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본 학회 회원들을 포함하여 불교미술사에 관심 있으신 모든 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7.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5교구 통도사 통도사 산내암자 지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4
    통도사 산내암자 지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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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5교구 통도사 통도사 주요 행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4
    통도사 주요 행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4

    통도사 화엄산림대법회(華嚴山林大法會)
    매년 음력 11월 1일
    법회기간 : 음력 11월 1일 ~ 음력 11월 30일
    화엄산림 기간 동안 설법전에서는 평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법사스님의 화엄경 법문이 있습니다. 화엄경의 법문내용이 어려워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금생에 지혜의 종자를 심어두는 것이기 때문에 법당에 들어오셔서 법사스님의 법문을 들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대승경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화엄경의 본래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육백년이 지난 뒤 서천(西天) 28조(祖) 가운데 제14대 조사(祖師) 용수보살께서 세간의 모든 학문을 일시에 섭렵한 뒤 발심하여 용궁에 들어가 화엄경을 보고 가져왔다고 합니다.
    화엄경에는 범어를 한문으로 번역한 세 종류의 번역본이 있습니다. 첫째는 실치난타 스님이 번역한 80권 화엄경, 둘째는 불타발타 스님이 번역한 60권 화엄경, 마지막으로 반야삼장 스님이 번역한 40권 화엄경이 바로 그것 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80권 화엄경으로 39품을 7처 9회에 나누어 부처님께서 설한 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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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성게
    화엄산림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 저녁예불 끝난 후
    법성게는 매주 토요일 저녁예불이 끝나고 설법전에서 동참신도분들과 함께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법주스님의 장엄염불로 진행되는 법성게는 영가에게는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유족에게는 친족을잃은 아픔을 위로하는 것이며, 슬픔에서 희망으로 안내하는 천도의식 입니다.
    동참신도들이 광목 끈을 잡고 법당을 도는 것은 모든 일체 중생들이 연기적 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슬픔과 기쁨을 서로 나누어 고해의 바다를 반야용선을 타고 함게 건너가자는 의지를 표현한 것 입니다.
    법주스님의 장엄염불이 진행되는 동안 동참 신도들은 일심으로 함께 따라하면서 영가의 극락왕생과 생전업장이 소멸되기를 간절히 기원해야 합니다. 또한 동참신도 모두 자신의 자성을 깨쳐 견성 성불하기를 발원해야 하는 것 입니다.
    마지막 날 회향 법회가 끝나면 신도분들은 위패와 다라니를 들고 금강계단(적멸보궁)을 한바퀴 돌아 고통없는 열반 정토로 영가를 안내하고 소대에서 원만하게 회향하게 됩니다.
    매주 일요일은 천도재를 봉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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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오신 날(초파일) - 매년 음력 4월 8일
    매년 음력 4월 8일
    행사기간 : 음력 4월 8일 당일
    불교의 개조(開祖)인 석가모니(釋迦牟尼)의 탄생일.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불탄일(佛誕日), 욕불일(浴佛日), 석탄일(釋誕日)이라고도 한다.
    사월 초파일은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와서 중생들에게 자비와 광명을 준 날이란 뜻에 일차적 의미가 있고, 그와 같은 의미가 민중의 구체적인 관심사와 결합하여 민중의 축제가 된 것이다.
    따라서 초파일에 행하는 연등행사와 욕불행사의 불교적 의미는 지혜를 밝힌다는 상징성이 담겨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것이 민중문화와 습합되면서 오랜 역사를 통하여 민중의 축제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와서는 이날을 공휴일로 제정하여 초파일의 역사성과 문화적 의미를 국민 모두가 되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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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도사 개산대재 영축문화축제
    매년 음력 9월 9일
    축제기간 : 음력 9월 9일 전후 3일 ~ 5일간
    개산(開山)은 ‘산문(山門)’이 열린 날, 곧 사찰을 창건한 날을 의미한다.
    개산대재(開山大齋)란 절의 창건일을 기념하여 여는 큰 법회를 말하며, 또한 사찰을 창건한 스님의 입적한 날을 기리는 추모법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후세에는 한 종파나 절을 창건한 스님을 존경하여 개산조(開山祖)라 하여 그가 열반한 날을 기념하여 해 마다 성대한 법회를 열고 있다.
    통도사의 개산조는 자장스님으로 매년 산중의 모든 스님들이 모여서 개산조당(開山祖堂)에서 헌공을 하며 스님의 생애를 조명하는 학술 세미나를 비롯해 전시회· 음악회 등 일반불자와 지역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 행사 로 꾸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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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초기도
    매년 음력 1월 1일
    기도기간 : 보궁기도 음력 1월 1일 ~ 1월 7일, 신중기도 음력 1월 7일 ~ 1월 9일
    통알(通謁)
    불교의 신년하례식으로 세알(歲謁)이라고도 한다. 새해 첫날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삼보와 호법신중, 대중에게 드리는 의식이다. 우선 부처님에게 삼배를 올리고, 법보와 승보에게도 삼배를 올린다. 또한 함께 참석한 대중들도 서로 예배를 한다. 세속의 세배와는 달리 삼보의 은혜를 입고 있는대중들이 그 동안의 은덕에 감사하고, 모두에게 부처의 자비가 함께 할 것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통알은 새로운 한해를 시작한다는 뜻에서 대중 가운데 가장 나이어린 사미가 예문을 읊으며 시작한다. 통알의식이 끝나면 법당에 모인 모든 대중이 노소에 따라 절을 하는데, 우선 방장스님 삼배를 올린 뒤에 주지스님과 산중 대덕스님 들에게 삼배를 올리고 그 다음으로는 일반 대중비구스님에게 하고 마지막으로 사미까지 신도들에게 인사를 받으면서 새해 세배를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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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중
    회향 음력 7월 15일
    기도기간 : 약 49일 동안 진행되지만 회향은 음력 7월 15일 고정
    우란분재(盂蘭盆齋)는 흔히 백중(百衆)이라 부르는 음력 7월 15일에 사찰에서 거행하는 불교 행사이다.
    여름안거를 끝내고 자자(自恣)를 하는 날인 음력 7월 15일에 지옥에 떨어진 조상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올리는 재(齋)이다.
    《목련경(目連經)》과 《우란 분경》에 보면, 효성이 지극한 목련존자가 살아생전에 무거운 악업을 지어 그 과보로 아귀(餓鬼)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를 천도(薦度)시키기 위하여 부처님께 구제 할 수 있는 방도를 물으니 “안거를 마친 대중스님들에게 음식과 의복을 공양하면 현재 살아계신 부모나 7대 선망부모가 모두 괴로움을 벗고 좋은 곳으로 태어나리라.”라고 하셨다. 이 같은 방편은 안거기간 스님들이 청정하게 수행하신 공덕에 힘입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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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살계 수계식
    행사기간 : 매년 음력 3월 5일 ~ 3월 7일
    대승불교의 보살이 지키는 계율의 총칭. 중생의 제도를 수행과 밀착시킨 이 계는 ≪보살지지경 菩薩地指經≫·≪우바새계경 優婆塞戒經≫·≪범망경 梵網經≫·≪보살영락본업경 菩薩瓔珞本業經≫ 등에서 설해지고 있으며, 각각 조금씩 다른 계상(戒相)을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 나라에서 많이 행하여졌던 것은 ≪보살지지경≫에서 설한 유가계(瑜伽戒)와 ≪범망경≫의 범망계(梵網戒)이다. 유가계에서는 섭률의계(攝律儀戒)라고 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섭선법계(攝善法戒)·섭중생계(攝衆生戒)를 보살계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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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오절 용왕제

    음력 5월 5일
    행사기간 : 음력 5월 5일 당일
    단오절은 민간에서는 여인네들이 나쁜 귀신을 쫓는다는 뜻에서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는 세시풍속으로 자리를 잡아 오고 있으나, 통도사에서는 화재로부터 사찰을 지키려고 대광명전 등 주요 전각에 소금단지를 교체하는 행사를 한다.
    통도사는 이날 구룡지 옆에서 용왕대제를 모시고, 법회 후 금강계단을 비롯한 경내 주요 전각과 요사채의 기둥 위에 얹혀 있던 소금단지를 새것으로 교체한다. 또 각 가정에서도 화재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신도들에게 항화마진언이 붙여진 소금주머니를 나눠준다.
    소금단지와 소금주머니에는 대광명전 좌우 벽면에 적혀있는 항화마진언인 '吾家有一客 定是海中人 口呑天漲水 能殺火精神(오가유일객 정시해중인 구탄천창수 능살화정신)'이라는, 수신(水神)을 찬탄하는 글귀를 새겨 화재안전을 강조했다.
    소금은 뜻으로 바다를 상징한다. 통도사는 매년 단오에 소금단지를 내리고 새로운 소금을 갈아 넣으며 단지를 항화마진언이 적힌 종이로 봉한 후 각 기둥 위에 올림으로써, 가람을 화재로부터 보호하기위한 방편을 쓰는 것이다. 아울러 사중 대중들에게 주인의식을 고취시키고, 바다와 같은 품성으로 내 도량과 사중 도량을 두루두루 살피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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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5교구 통도사 통도사 화엄산림대법회(華嚴山林大法會)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4
    통도사 화엄산림대법회(華嚴山林大法會)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4

    화엄산림 법회의 유래
    화엄산림 법회는 1925년 극락암 경봉스님께서 어려운 노인들을 보살피기 위해 만일염불회를 개설한데 이어 1927년 보우스님, 해담스님과 함께 극락암 무량수각에서 삼칠일간 법문하시는 것으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젊은 날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 봐야 자신의 몫은 반 푼 어치도 없다.’는 화엄경 구절을 읽으시고 발심하여 제방의 선원을 두루 다니시며 참선수행에 매진하게 되는 인연을 갖고 계셨던 스님께서는 선사(禪師)로써 일평생 참선수행을 하셨지만 화엄경의 내용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문 중에 인용하셨고 만년에 이르러서는 ‘화엄’(華嚴)이라는 두 글자를 쓰시면서 “내 평생 공부가 여기에 담겨있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화엄경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첫 해에 화엄산림 법회를 주관하시면서 낮에는 무량수각에서 화엄경 법문을 하시고 밤에는 삼소굴에서 화두를 들어 정진하다가 1927년 11월 20일 새벽에 방안의 촛불이 출렁이는 것을 보고 조사선의(祖師禪義)를 깨달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대방광의 진리가 장엄하는 공덕의 숲, 화엄의 산림이 길을 열고 납자들을 재접하기 시작한 것 입니다.
    이후 스님께서는 통도사 백련암, 김해 연화사, 반야사, 밀양 무봉사 등의 도량에서 화엄산림과 함께 법화경 산림, 유마경 산림을 개설하여 중생교화에 힘쓰셨지만 화엄산림 법회만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화엄산림 법회의 목적
    경봉스님께서는 1930년 화엄산림에 동참을 권하는 서문을 쓰시면서 화엄산림 법회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우리는 도(道)는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견성하여 성불하는 것이며, 자기도 깨닫고 남고 깨우쳐 이 둘이 이롭고 원만하게 되는 도(道)이다. “비유하자면 어둠 속에서 등불 없이는 보배를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불교를 말하여 줄 사람이 없으면 설사 지혜가 있더라도 능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현현(玄玄)하고도 현현한 이치와 오묘하고도 다함이 없는 법을 설할 준비를 하였으니 함께 원력을 세워 동참하기를 간절히 바라노니 유루(有漏)를 버리고 무루(無漏)의 일을 증득할 지어다.” 다시 말해서 경봉스님께서는 우리의 불교가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견성하여 성불하는데 있으며, 자기도 깨닫고 남고 깨우쳐 이 둘이 이롭고 원만하게 되는 도(道)’임을 먼저 밝히시고 화엄경 법문이야말로 ‘어둠 속에서 보배를 찾아 볼 수 있게 하는 등불과 같은 존재’임을 비유로써 말씀하신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법문을 통해 우리들 각자가 ‘유루의 법을 버리고 무루의 법을 증득’하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명확하게 밝혀 놓으신 것 입니다.

    화엄산림 법회 동참 서문 전문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성현의 가르침을 잇고 이치를 밝히고 성현의 실천을 본받아 행하여 성현의 경지에 이르게 되나니 우리의 도(道)는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견성하여 성불하는 것이며, 자기도 깨닫고 남도 깨우쳐 이 둘이 이롭고 원만하게 되는 도(道)이다.
    그러나 마음이 곧 부처이니 산은 푸르고 물은 맑으며,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니 나무가 마르고 잎이 흩어지며,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니 바람은 소슬하고 물은 냉랭하도다. 이러한 시절에 어떠한 것이 그르며 어떠한 것이 옳은가. 입을 열기 어려운 곳이다.
    비록 언어를 의지하지 않으나 말 없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알라. 문자의 성격을 떠나면 비록 하루종일 말하더라도 말한 바가 없으니 어찌 입을 다물고 묵묵히 있기만 하겠는가. 세존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여 49년간 설법하신 것이 또한 이와 같은 뜻이니 『대방광불화엄경』법문은 바닷물로 먹물을 삼아 글을 쓰더라도 그 뜻을 다하지 못하고,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지혜를 발휘함에는 보살도 오히려 헤매게 되며, 성문(聲聞)은 측량할 수 조차 없는 것이니 오묘한 도의 심오한 이치는 가히 생각하고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라.
    비유하자면 어둠 속에서 등불 없이는 보배를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불교를 말하여 줄 사람이 없으면 설사 지혜가 있더라도 능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금년 겨울 10월에 본사 극락암에서 큰 법회를 열어 현현(玄玄)하고도 편편한 이치와 오묘하고도 다함이 없는 법을 설할 준비를 하였으니 함께 원력을 세워 동참하기를 간절히 바라노니 유루(有漏)를 버리고 무루(無漏)의 일을 증득할 지어다.
    헤아릴 수 없는 공덕과 소멸되지 않는 복전(福田)은 천추(千秋)에 영험의 자취가 너무 많아서 번거로이 기록하지 않으니 뜻이 같은 여러분께 이 글에 서명하기를 청하노라. 다만 원하노니 맑은 바람 힘을 같이 해서 일시에 이 문으로 불어올지어다.
    (1930년 9월 25일 경봉스님 작성)

  10.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5교구 통도사 통도사 부처님 오신 날(초파일) - 매년 음력 4월 8일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4
    통도사 부처님 오신 날(초파일) - 매년 음력 4월 8일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4

    사월 초파일이라 하는 것은 음력 4월 8일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 모두 4월 8일을 탄생일로 기념하지만, 일본은 음력이 아닌 양력 4월 8일로 고쳐 기념하고 있다.
    초파일은 불교 4대 명절 가운데 하나이다. 2월 8일 석가(釋迦) 출가일(出家日), 2월 15일 열반일(涅槃日), 12월 8일 성도일(成道日)을 합쳐 불교의 4대 명절이라 한다. 이 4대 명절 중 초파일이 가장 큰 명절이다. 그러나 이날은 불자(佛子)이건 아니건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함께 즐겨온 민속명절로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이날은 연등행사(燃燈行事)와 관등(觀燈)놀이를 중심으로 하는 갖가지 행사가 벌어진다. 중국에서도 이날 연등행사가 이루어지나 우리나라처럼 성행하지는 않으며, 일본에서는 연등축제 대신 불전(佛前)에 꽃을 올리는 ‘하나마쯔리’로 대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