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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운주사 운주사 칠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8호)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08
운주사 칠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8호)-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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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운주사 운주사 원형다층석탑
-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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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8
운주사 원형다층석탑-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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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8
운주사원형다층석탑(고려), 보물 제798호
높이 571cm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기단은 높은 편으로 5매의 돌로 구성되었는데 각 면을 10각으로 깎아 원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기단갑석은 윗면이 편평하고 측면이 둥글게 처리되었으며 그 표면에는 16엽의 앙련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부는 옥개와 옥신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1·2·3층의 옥신석에는 중앙에 2줄의 음각선이 돌려져 있고 4·5·6층에는 1줄만 있다. 옥개석은 기단갑석과 반대로 아랫면이 편평하고 측면이 호형으로 되어 있다. 1층 옥개 아랫면에는 2줄의 음각선이 얕게 새겨져 있으나 2층 이상에는 1줄뿐이다. 각 층의 원형 옥개석은 위로 올라갈수록 옥신석과 함께 완만하게 줄어들면서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이 석탑은 원형으로 된 형태와 구성 등이 모두 일반적인 석탑형식에서 벗어나고 있어, 고려시대에 유행한 이형석탑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운주사 운주사 석조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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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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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8
운주사 석조불감-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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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8
운주사석조불감(고려), 보물 제797호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높이 석조불감 507cm, 남쪽 석불좌상 245cm, 북쪽 석불좌상 264cm. 지대석 위에 5매의 판석을 세워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1매의 넓은 갑석을 얹은 다음 석조불감이 놓여 있다. 감실은 장방형으로 좌우벽면은 판석으로 막았으나 앞뒷면에는 출입구를 내어 불상이 밖에서 보이도록 했다. 지붕은 팔작형태로 정상에는 용마루가 수평으로 표현되었고 그 양쪽으로 치미를 장식했다. 감실 안에는 2구의 석불이 가운데 세워진 1매의 판석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맞대고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40에 보이는 "雲住寺在千佛山……又有石室二石佛相背而坐"라는 내용과 일치한다.
남쪽을 향하고 있는 불상은 머리 윗부분이 파손된 상태인데 넓고 편평한 얼굴에는 눈썹과 콧등의 일부가 시멘트로 보수되어 있다. 짧고 굵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지만 목과 어깨부분이 붙어 있어 둔중한 느낌을 준다. 밋밋한 몸체 위로는 통견(通肩)의 법의를 걸쳤으며 옷주름 표현은 선각으로 형식화되었다. 오른손은 배에 대고 있는 반면 왼손은 어깨에서 일직선으로 내려와 무릎 위에 얹고 있으나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어색하다. 광배는 불신과 약간 떨어진 뒤쪽의 판석에 두광과 신광의 구분없이 구불구불한 선으로 표현했는데, 불꽃무늬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북향한 불상도 같은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나 두 손은 옷 속에 감싸여 있어 정확한 수인(手印)을 알 수 없다. 특히 옷주름이 어깨 위에서 내려오면서 가슴 앞의 손 부근에 집중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매우 도식적이다. 이 불상들은 넓적하고 평면적인 얼굴표현이나 밋밋한 체구, 도식화된 옷주름 및 치졸한 조각수법 등에서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양식을 잘 보여준다.
석조불감 역시 각부의 세부표현이나 결구방식이 세련되지 못한 점 등에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석재로 만든 거대한 크기의 불감이라는 점이나 감실 안에 2구의 석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는 보기 드문 예라는 점 등에서 고려시대 불교미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대한불교조계종 운주사 운주사 구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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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6-08
운주사 구층석탑-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08
보물 제796호. 높이 10.7m.
이 석탑은 운주사 석탑 가운데 크기가 가장 크고 높은 것으로 큰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커다란 바위 위에 3, 4단의 각형 받침을 조각하고 그 위에 바로 탑신이 놓여 있는 형식으로 지대석과 기단부가 생략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일반적인 탑과는 달리 별도의 기단을 구축하지 않고 암반 위에 여러 단의 방형 좌대를 조각하고 직접 세웠다. 탑신부에 그 안에 꽃이 새겨진 마름모꼴의 기하학적인 문양이 가득히 조각되었다. 특히 하부에 사선이 새겨진 지붕돌은 납작하고 넓을 뿐만 아니라 경쾌하여 전체적으로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형식을 하고 있다. 운주사의 여러 석탑 중에서 제일 높지만상대적으로 지붕돌이 넓어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조성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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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운주사 운주사(雲住寺)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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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6-08
운주사(雲住寺) 소개-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08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千佛山 또는 靈龜山) 기슭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 말사입니다.
창건설은 3가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1.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했다는 설.
2. 운주(雲住)스님이 주도했다는 설.
3. 마고 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 통일신라말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에 근거한 비보裨補사찰로 세웠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 지형이 배(舟)형으로 되어 있어 배의 돛대와 사공을 상징하는 천불과 천탑을 세웠다하고 합니다.
비보裨補사찰이라 함은 ‘돕고 보호한다’는 의미로 강한 곳은 부드럽게하고 허한 곳은 북 돋워줌으로서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으면서도 호국과 중생들의 이익을 도모한 도선국사의 지혜가 담긴 사찰을 의미합니다.
『동국여지지 東國輿地志』에 고려 혜명(惠明)스님이 1,000여 명과 함께 천불천탑을 조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혜명스님은 970년(광종 21)에 관촉사 대불을 조성한 혜명(慧明)스님과 동일인으로 보고 있어 운주사가 고려초기에 건립되었음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1481년(조선 성종 12년)에 처음 편찬되고 중종 25년(1530)에 증보된 『동국여지승람』의 능성현(綾城縣)조에는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다.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 있고, 또 석실이 있는데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雲住寺在千佛山寺之左右山背石佛塔各一千 又有石室二石佛相背而坐)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1984 ~ 90년까지 4차례 발굴조사 과정에서 금동불입상을 비롯하여 순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의 파편, 기와편 등 출토된 유물로 볼 때 늦어도 11세기 초인 고려초기에는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홍치 8년(弘治八年, 1495, 연산군 1년) 운주사환은(雲住寺丸恩)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면서 4번째 중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사찰의 이름이 '운주사(運舟寺)' 뿐 아니라, '운주사(雲住寺)'로도 불렸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후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왜적에 의해 폐사되었다가 1800년경에 설담 자우(雪潭 自優)스님이 무너진 불상과 불탑을 세우고 약사전 등을 중건했으며, 1921년에 발간한 『도암면지』에 1918년 불자 16명이 시주하여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 사찰 경내에는 조각수법이 정교하지 않고 투박한 80여기의 석불, 21기의 석탑, 173기의 불재 및 탑재관련 유물이 남아 있습니다. 조성연대는 일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고려초기에서 중기에 걸친 오랜 기간을 두고 계속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017년 3월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이란 이름으로 천불천탑 운주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최종 등재됐습니다. 운주사의 대표적 유물은 운주사 9층 석탑(보물 제796호),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와형 석조 여래불(전남유형문화재 제273호)을 비롯해 총 16건의 지정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
대한불교조계종 신흥사 완도신흥사목조약사여래좌상 (莞島新興寺木造藥師如來坐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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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6-08
완도신흥사목조약사여래좌상 (莞島新興寺木造藥師如來坐像)-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08
완도신흥사목조약사여래좌상 (莞島新興寺木造藥師如來坐像)
시대 : 조선시대 후기(1628)
지정(등록)일 : 2000.12.29
완도 신흥사에서 보유중인 ‘목조약사여래좌상’은 4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전라남도 문화재 2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흥사 약사전에 있는 목조약사여래좌상 불상의 발원문의 의하면 1628년(인조 6) 처음 조성되었고, 1802년(순조 2) 중수하였으며, 1845년(현종 11)개금불사하였고, 1865년(고종 2) 중수 개금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원래 해남 대흥사 소속 암자인 심적암에 있던 것을 초의스님이 대흥사 대광명전으로 옭겼고, 그 뒤 응송스님(속명 박영희)이 현재의 위치인 신흥사 약사전 으로 옮겨 모셨다고 한다. 목조약사여래좌상은 임진왜란의 혼란기를 지나 불상 조성이 다시 이루어지는 시기의 것이며, 그 조성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시대 불상 편년 연구의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