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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불교조계종 장안사 장안사 응진전 석조석가삼존십육나한상 (長安寺 應眞殿 石造釋迦三尊十六羅漢像)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장안사 응진전 석조석가삼존십육나한상 (長安寺 應眞殿 石造釋迦三尊十六羅漢像)
    작성자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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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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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의 석가여래ㆍ제화갈라ㆍ미륵보살 등 석가삼세불좌상과 16나한상은 파손되거나 결실된 부분이 없이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佛身 전체에 호분이 칠해져 있으며, 16나한상과 권속들의 법의는 다양한 색깔로 채색되어 있다. 응진전 석가삼존상과 16나한상들은 복장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는 기문에 의해 1684년 (康熙 23)에 양공 승호(勝湖), 희연(熙衍), 천휘(天輝), 천담(天潭), 법자(法?), 법종(法宗), 수종(守宗), 허지(虛芝), 도신(道信) 등 9명이 관여하여 장안사에서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응진전에 봉안된 23구 조각상은 대웅전의 불상보다 무른 불석으로 보이며, 대웅전 삼존불보다 25년 후에 조성되었다. 응진전의 조각상들은 명부전 석조지장시왕상과 동일한 시기에 조성되었고 조각 수법과 표현기법에서도 동일하여, 당시 장안사의 큰 佛事에 의해서 조성기문에 기록된 것처럼 많은 시주자들이 참여하여 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장안사 응진전 석가삼존불상과 16나한상 및 권속은 조성시기와 봉안처, 조성자 및 시주자 일원이 명확한 17세기의 중요한 작품이며, 조성자로 밝혀진 良工의 명단은 아직 작품이 밝혀진 바가 없으므로 부산/경남지역 불교조각승의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

  2. 대한불교조계종 고불사 고불사 선종영가집(古佛寺 禪宗永嘉集)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고불사 선종영가집(古佛寺 禪宗永嘉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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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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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종영가집』은 우리나라 선림(禪林)에서 많이 읽힌 선종의 요결서로 당나라 현각(玄覺)이 법문을 짓고 송나라 행정(行靖)이 주석한 책으로 상하 2권 1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간행된 것이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 전하는 고려 우왕 7년(1381)의 한문본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선종영가집』의 내용은 모도지의(慕道志儀), 계교사의(戒?奢意), 정수삼업(淨脩三業), 사마타송(奢摩他頌), 비파사나(毗婆舍那), 우필차송(優畢叉頌), 삼승점차(三乘漸次), 이사불이(理事不二), 권우인서(勸友人書), 발원문(發願文) 등 모두 10문(門)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기에 의하면 1573년에 평안도 묘향산 보현사에서 개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3. 대한불교조계종 고불사 고불사 묘법연화경(古佛寺 妙法蓮華經)
    작성자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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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3
    고불사 묘법연화경(古佛寺 妙法蓮華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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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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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3년(성종 24)에 홍산(鴻山)에 있는 만수산 무량사(萬壽山 無量寺)에서 간행한 목판본으로, 1450년(세종 25)에 세종이 동궁으로 있던 문종의 중병을 불력(佛力)으로 고치기 위해 주자소(鑄字所)로 하여금 인출케 한 갑인자본(甲寅字本)을 저본(底本)으로 번각(飜刻)한 것이다. 7권 3책의 완본으로 오침안정법의 선장으로 장정되었으며, 권말에는 김시습의 발문(跋文)이 있다.

  4. 대한불교조계종 고불사 고불사 목조여래좌상 古佛寺 木造如來坐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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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고불사 목조여래좌상 古佛寺 木造如來坐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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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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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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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불사의 목조여래좌상은 높이 52.8㎝의 소형상으로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 결가부좌의 자세에 손은 다리 위에 살짝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인(阿彌陀印)을 하고 있다. 가늘어 보이는 상반신에 비해 다리의 좌우와 전후의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으며, 보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이 불상은 방형(方形)의 얼굴은 양 볼이 볼록하게 양감이 있으며, 가늘게 뜬 작은 눈에 두툼한 눈꺼풀, 얇은 입술, 그리고 삼각형으로 오뚝하면서 큼직한 코가 특징적이다.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온화한 인상이며, 비록 소형이지만 단정하고 간결함과 부드러움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양감 있는 얼굴에 작은 눈과 큼직한 코 등의 표현이 주는 인상, 가는 신체에 비해 넓은 하반신의 신체 비례, 편단우견의 대의 착의법과 다리 앞의 넓은 옷주름 등의 표현이 17세기 후반 조각승 인균파의 한 사람인 삼인(三忍)의 불상 특징과 유사한데, 인균파의 작품은 경상도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며, 이와 관련된 조각승도 많지 않아 조선 후기 불상 양식 특징은 물론 조각승의 유파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작품이다.

  5. 재단법인 능인선원 능인선원 법회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능인선원 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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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일요법회
    일요일마다 생활의 지혜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수준 높고 감명 깊은 지광스님의 법문이 펼쳐지는 일요법회가 열립니다. 전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스님의 법문으로 부처님법의 정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일시 :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장소 : 대웅전 (02-577-5800)
    안내 : 일요법회가 끝나면 처음 오신 새법우들에게 법당에서 마련한 선물과 법당, 법회 능인선원의 모든 행사 및 기도에 대한 안내가 있습니다. 이 때는 원장스님의 말씀도 듣고 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가정법회
    가정법회는 능인불교대학을 졸업한 법우님들로 구성된 각 지역별 모임입니다. 서울,경기일원 대전까지 1000개 지역으로 구성되어져 있으며, 180명인 능인장 밑에 1000여명의 능인등이 각 지역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능인등 1명이 10명 정도의 법우님들을 맡아 관리하고 있으며, 모든 연락망을 갖추고 있어 능인선원을 움직이는 중추적인 조직입니다. 한달에 한 번 가정법회 모임을 가져 상호유대를 다지고, 그 지역 애경사를 함께 도모하고 있습니다. 공양간, 연등제작, 국녕사 등의 법당 일에 지역 법우님들이 순번제로 봉사하고 있으며, 한가정 한 식구처럼 다정한 이웃으로 부처님 품속에 작은 불국토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순례법회
    매월 1번씩 전국의 사찰을 찾아 기도하고 소원성취를 발원할 수 있는 순례법회가 있습니다. 1년에 2회 봉정암 순례도 있습니다.
    문의 : 02-577-5800 (교환) 273

    어린이법회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법사스님께서 법문과 경전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불교학교,찬불가 지도, 생일잔치,수련회 및 순례법회 등의 행사를 통해 어린이들의 신심을 다지고 있습니다.
    일시 : 일요일 오전 11시
    장소 : 복지관 3층 305호

    중고등법회
    자발적으로 내면의 꿈틀거림을 밖으로 표출할 수있도록 북돋아주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행복이란? 일상의 사소한발견에서 시작됩니다. 능인 중고등법회는 부처님말씀속에서 살아가는 이치를 발견하는 행복한 법회를 선사합니다.
    법회 : 매주일요일 오전11시
    장소 : 능인선원 대불광장 약사전
    프로그램 : 법사스님법문, 명상지도, 난타수업, 다도수업. 다양한 문화 컨텐츠 야외법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대학청년법회
    능인선원 대학부는 대학생 연령의 젊은이들이 스님 법문도 듣고 부처님 말씀도 연구하며, 서로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입니다. 지도법사 스님의 지도 아래 매주 한 번 법회를 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여러 행사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불자로서의 소양을 닦아가고 있습니다.
    일시 : 일요일 오후 2시
    장소 : 관음전

    개원법회
    매년 연말에 대웅전에서 전법홍포 도량 능인선원 개원 기념법회를 봉행합니다.

    송구영신법회
    연말에는 일년을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법회가 열립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촛불법회가 경건하게 이루어집니다. 떡국 공양을 함께 합니다.

    보살계 수계법회
    일년에 2번 춘계와 추계 보살계 수계 대법회가 있습니다. 보살계 수계는 부처님의 가르침 따라 계를 지키며 살겠다는 서원을 부처님께 약속드리는 의식입니다.

    방생수륙제
    일년에 한번 능인선원에서 는 방생법회를 하고 있습니다. 방생법회는 생명존중정신 을 되새기고 자비를 실천 하는 숭고한 의식입니다.

    기별법회
    능인불교대학을 졸업한 졸업생으로 구성된 기별 동창회 모임입니다. 각 기별로 기팀장 밑에 부팀장, 총무단이 주축이 되어 각 지역별 간사로 동창회가 구성되어 있으 며, 법당의 각종 봉사에 기별 단위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매월 한 번씩 기별 법회가 있어 기수별로 친목을 도모하고 법당 소식을 알립니다. 동창회 모임 외에 총 간사모임, 지역팀장 모임, 순례법회를 진행하 며 기별 애경사에 동참하여 도반의 우의를 다지고 있습니다. 매월 셋째주 수요일 법당에서 기별법회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문의 : 기별본부 (교 226)

  6. 재단법인 능인선원 능인선원 소개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능인선원 소개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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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은 10이 아니고 10은 1이 아닙니다. 그러나 1은 10속에 들어있고 10은 1을 품습니다. 모두가 하나인데도 세상은 온통 갈등과 불화의 아수라장입니다. 이 같은 사바세계에 부처님께서 지혜의 빛 자비의 광명으로 오셨습니다. 중생들의 무명을 걷어내기 위함이셨습니다.
    종교의 생명은 진리의 선포입니다. 전법과 기도의 생활화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전법을 통해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다면 필경에는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길 없다 하셨습니다. 갠지스강의 모래알같이 많은 삼천대천 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 보시한다 하더라도 부처님 말씀 한마디 베푸는 것에 비할바 없다 하셨습니다.

    능인선원은 고색 창연한 전통사찰과는 궤도를 달리합니다. 타 종교에 오랜 세월 몸담고 살아오신 지광스님께서 운동권으로 몰려 언론계 해직의 아픔을 딛고 산중으로 피신하시던 중 운명적으로 불교를 만났습니다. 도피생활이 불교를 만나게 했고 오묘한 불교의 이치를 터득케 했습니다. 병마를 안고 인연따라 들어선 강남땅에서 불교의 현실을 알게 됐고 전법의 중요성을 골수에 사무치게 깨달으셨습니다. 그 결과 뜻있는 인연들의 도움으로 참선과 전법 포교를 겸한 능인선원을 열게 되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의 사찰마다 스님들이 신도들에게 불교를 가르치도록 하자는 서원으로 37년 전 모든 사찰에 불교대학 설립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무지 무명의 중생들에 의해 ‘고등교육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대법원까지 장장 수년에 걸친 쟁송에 시달렸습니다. 사찰에서 불교대학이란 말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이 법적 이유였습니다. 불교대학이라는 명칭을 쓰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재판 끝에 대법원에서 승소해 전국 모든 사찰에서 사찰내 불교대학이란 명칭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당초 세웠던 서원을 실현했던 것입니다.

    그 후 능인선원은 많은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불교대학을 운영하며 국내 최대의 불교포교도량으로 우뚝 솟았습니다. 능인선원은 그동안 훌륭한 전법사 양성을 위해 화성 능인대학원대학, 어린 시절의 곤고함을 이겨내도록 돕기 위한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한 강남보육원 강남드림빌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광스님 자신이 어린시절의 아픔을 통해 다짐했던 불우한 아이들을 돌보겠노라는 자신과의 약속의 결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능인종합사회관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보살의 길을 걷고 계십니다.

    능인불교대학은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에도 74기에 이르러 10만을 넘는 전법의 사도들을 졸업시키는 국내 최대의 불교 사관학교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한마디 더 첨언할 것은 우리는 진정 부처님의 영험 가운데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잘 믿지 않습니다만 기도 정진하는 사람은 믿습니다. 진정 기도 체험한 사람만 선몽을 받습니다. 영험 어린 선몽을 통해 구룡산록 점지받은 능인선원 자리는 진실로 불보살님과 신장님들의 보살핌이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구룡산 밑에 우뚝 솟은 세계최대의 약사대불 역시 약사여래부처님의 현신을 통한 가피이셨음을 밝혀드립니다. 약사대불을 모신 후 전 세계적인 코로나가 덮쳤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약사여래부처님 전 기도를 올리라는 명령이라 할 것입니다. 능인선원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부처님을 향한 투철한 신심과 기도와 천도 그리고 전법 영험이 함께하십니다. 모든 신도들이 불보살님과 신장님들의 가호 아래 한걸음 한걸음 견실하게 나아가고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전법을 생명으로 하고 하나에도 기도와 천도, 둘째도 기도와 천도, 셋에도 기도와 천도, 끝에도 기도와 천도입니다. 능인선원은 열심히 전법하는 불자 그리고 기도와 천도를 생명으로 하는 불자들의 신심 깊은 도량입니다. 그 같은 정진으로 등록신도수 10만8천에 달합니다. 한가족을 세명으로 잡는다면 줄잡아 30만 이상의 신도들이 함께하는 한국포교의 최대 사찰이 되었습니다. 이미 국내 최대의 포교도량으로 자리매김하였지만 절대 능인선원은 교만하지 않고 겸허한 마음으로 영원한 정진 영원한 전진의 길을 나갈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옵건대 능인선원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영원한 정진 영원한 전진을 생명으로 하며 나아가고 있고 나아갈 것입니다.

  7. 재단법인 능인선원 능인선원 조직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능인선원 조직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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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4교구 범어사 선찰대본산 금정총림 범어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선찰대본산 금정총림 범어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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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의 본사로서 조계 8대 총림의 하나이면서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영남3대 사찰입니다. 약 1,300여년 전인 678년, 신라 문무왕18년 의상대사가 화엄십찰의 하나로 왜구를 물리치기 위한 호국비보사찰로 창건하였습니다. 이후 835년, 신라 흥덕왕 10년에 개창 된 후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으나 1613년, 광해군 5년 묘전 화상이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1703년 숙종 29년에는 금정산성 축조 후 승군사령부로서 성곽 수비를 맡는 등 지역방위체제의 일익도 담당 하였으며 구 한말에는 사라져가던 전통 선풍을 부흥시켜 조선총독부로부터 선찰대본산으로 인가 받았습니다.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때는 ‘범어사학림의거’를 주도하는 등 항일운동을 펼치기도 하였고 1950년대는 동산 대종사가 주도한 불교정화운동의 중심지로서 용성, 동산, 성철을 비롯한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면서 오늘의 종합 수행 도량인 총림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천년 고찰 범어사는 어떤 유래로 창건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1,300여 년 전, 바다 동쪽의 왜구들은 호시탐탐 신라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문무 대왕은 근심과 걱정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꿈에 기인이 나타나“대왕이시여, 근심하지 마십시오. 태백산 산중에 의상이라는 큰 스님이 계시는데, 항상 성스러운3천 명의 대중을 거느리고 화엄법문을 연설하기에, 여러 신과 천왕이 항상 떠나지 않고 수행합니다. 또한 동쪽 해변에 금정산이 있고 그 산정에 높이50여 척이나 되는 바위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 바위 위에는 항상 금빛으로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습니다. 그 우물에는 하늘나라로부터 오색찬란한 구름을 타고 내려온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헤엄치며 놀고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의상 스님과 함께 그 산의 바위 아래로 가셔서 칠일 칠야 동안 화엄 신중을 독송하면 그 정성에 따라 동해의 왜병들을 진압할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곧 사라졌다. 아침이 되자 왕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꿈 이야기를 하고 곧 의상대사를 맞아오게 하여, 함께 금정산으로 가, 칠일 철야를 열심히 독경했습니다. 이에 땅이 크게 진동하면서 홀연히 여러 부처님과 천왕, 신중 그리고 문수동자들이 변하여 모두 병기를 가지고서 동해의 왜적을 토벌하니 모든 왜인 병사가 빠져 죽고 살아남는 자가 없었습니다. 대승을 거두고 돌아온 왕은 크게 기뻐하여 의상 스님과 함께 금정산 아래에 큰 절을 세웠으니, 그것이 바로 호국비보사찰 범어사 입니다. 조선조 역사서 ‘신증 동국여지승람’과 ‘동래부지’에도 이러한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선찰대본산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은 마음의 근원을 구하는 수행도량이라는 뜻으로 참선을 통해서 마음속에 일어나는 갖가지 잡념과 망상을 쉬게 하고, 자신의 내면세계의 참다운 불성을 깨닫도록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구한말, 성월스님이 범어사 주지로 있을 때 범어사를 선찰대본산으로 명명하고 당대의 최고 고승 경허스님을 범어사 조실로 초빙했다.

  9. 대한불교인왕종 인왕사 인왕사 소개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인왕사 소개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인왕사는 조선초대왕 이성계때 건립하였고 건립년대는 1397년에 완공되었다고 이조실록에 기록되어있다. 창립주는 무학대사이며 초대 주지는 조생 스님으로 경복궁의 내원당 당주로써 태조 이성계에게 알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인왕사는 700년의 고찰로써 이어져 오다가 연산군 9년 1503년 11월9일에 경복궁이 내려다 보인다하여 인왕사, 복세암, 금강굴, 정자지동 등 11채의 집을 모두 철거하였다.


    그 후 다시 중창하여 유지되어 오다가 인왕사와 복세암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어 폐사지만 남았던 것을 1900년대 전후를 옛인왕사터에 선바위를 중심으로 3차 중창을 박선목 거사가 선암정사를 창건하여 수도 정진하였다. 그후 1912년에 탄옹스님이 대원암을 창건하고 1914년에 서옹스님이 극락전을 1924년에 자인 바구니가 치성단을 중창하고 그 시절 1930년에 10개 암자가 모여 수도 정진하였다. 그후 1942년에 각사암을 통합하여 봉은사 말사로 등록하여 편입되어 오다가 1965년 대한 불교 정토정으로 등록하였다.

    그 후 1977년도에 각사람 주지들의 합의하에 뜻을 모아 인왕사를 중심으로 선암정사, 대웅전, 보광전, 극락전, 관음전은 인왕사에 증여하고 토지및 건물 등기를 완료하였으며 나머지 사암들은 인왕사의 부속암자로 칭하게 되었다. 그 후 1988년 7월 15일자로 문화관광부에 전통사찰 인왕사로 등록 지정되었다. 인왕사의 부속건물및 토지는 대웅전, 관음전, 선암전사는 토지 건물이 전통사찰로 지정하였고 건물은 극락전, 불광전은 건물만 전통사찰로 등록되었다.

  10. 대한불교조계종 문수사 문수사 창건과 설화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문수사 창건과 설화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서울의 진산(鎭山)인 삼각산(三角山) 정상(頂上)에 자리한 문수사(文殊寺)는 고려예종(高麗睿宗)4년(1109)에 대감탄연국사(大鑑坦然國師)께서 개산(開山)하였고 국사께서는 주위의 절묘한 기암괴석(奇岩怪石)과 경관(景觀) 천연동굴(天然洞窟)에 매료되어 이곳을 불법의 유연찰토(有緣刹土)로 정하고 불우(佛宇)를 지어 문수암(文殊庵)이라고 하고 천연동굴(天然洞窟)을 문수굴(文殊窟)이라 명명(命名)하였다.
     
    국사(國師)께서는 참선(參禪)과 교학(敎學)을 두루 하여 국사로 책봉(冊封)되었을 뿐 아니라 고려조(高麗朝) 제일가는 명필가(名筆家)로써 그의 필적(筆跡)은 청평(淸平) 문수원기(文殊院記)와 예천북룡사비(醴泉北龍寺碑) 북한산 승가굴중수비(僧伽窟重修碑) 청도 운문사원응국사비(雲門寺圓應國師碑)가 오늘날까지 전한다.
         
    고려불교중흥조(高麗佛敎中興祖)인 태고보우국사(太古普愚國師)께서도 이 동굴(洞窟)에서 정진삼매(精進三昧)중 청의동자(靑衣童子)로부터 차(茶)한잔 얻어 마시고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후로부터 수많은 고승석덕(高僧碩德)의 주석처(住錫處)가 되었으며 신령(神靈)한 영험도량(靈驗道場)으로 널리 알려져 국내제일(第一)의 기도도량(祈禱道場)이 되었다.

    고려의종(高麗毅宗) 21년(1167)에 왕(王)이 친히 등정(登程)하였고 조선조문종(朝鮮朝文宗) 원년(1451)에 문종의 따님이신 연창공주(延昌公主)가 중창(重創)하여 한때는 왕가(王家)의 원찰(願刹)이 되기도 하였다(고려사 왕조실록)
         
    조선조(朝鮮朝) 암행어사(暗行御史) 박문수(朴文秀)도 그의 부친(父親)이 오랫동안 후사(後嗣)가 없어서 이곳에서 기도(祈禱)로 얻어진 인물(人物)이며 이승만(李承晩) 전대통령(前大統領)도 그의 자당(慈堂)께서 이곳에서 기도로 얻어진 인물이다. 이 인연(因緣)으로 4.19직전 8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친히 등정(登程)하여 문수사(文殊寺)의 사액(寺額)을 남기고 사내대중(寺內大衆)과 함께 기념사진(記念寫眞)도 찍어 현재 보존되어 있다.
     
    1921년에 삼성각을 중창(重創)하고 오백나한전을 개축(改築)하였다. 이후 6.25동란으로 소진(燒燼) 되었던 것을 당시 서신수(徐信洙)스님의 발원(發願)으로 고(故) 박충식(朴忠植) 국회의원이 개축(改築)하였다.
     
    1983년 5월에 허혜정(許慧淨)스님이 주지(住持)로 부임(赴任)하여 삼성각(三聖閣)과 나한전(羅漢殿)을 재 개축하고 약 40평으로 된 천연동굴(天然洞窟)을 굴법당(窟法堂)으로 장엄(莊嚴)하여 사찰을 찾는 모든 불자들에게 환희심(歡喜心)을 갖고 기도(祈禱)와 참배(參拜)를 할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