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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룩스 불교 :: CYLOOKS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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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불교조계종 삼천사 삼천사 연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삼천사 연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1) 원효(元曉)대사가 개산(開山)하였다. 1482년(조선 성종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여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1592년(조선 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임란 중에 소실 되었으나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입상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삼천사(三千寺)라 하여 다시 복원하였다.

    평산 성운 화상의 발원과 삼천사 불자들의 염원을 함께하여 조성된 세존진신사리불탑은 한국 석탑의 대표로 뽑는 국보 제48호 오대산 월정사 9층 석탑과 인도 석탑의 대표인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아쇼까 (석주 4두(四頭) 사자상) 대탑을 원형 그대로 접목하여 탑신을 15m크기로 한국/인도형 세존진신사리불탑으로 나투었다.

    또한, 현 삼천사 위치에서 2km 위쪽의 옛 삼천사 터에서 발굴된 대형 석조(石槽)와 동종(銅鐘), 연화대좌(蓮花臺座), 석탑기단석(石塔基壇石),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 대지국사(大知國師) 법경(法鏡)의 비명(碑銘)등 600여점의 문화재가 발굴되었고 그 중 동종은 보물로 지정받아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970년대에 삼천사 주지로 부임한 평산 성운 화상이 경내에 위치한 마애여래입상이 천년 고불(古佛)임을 입증하여 보물 제 657호로 지정받고 50여 년의 중흥 불사를 통해 대웅보전, 산령각, 천태각, 연수원, 요사채 등의 30여동의 건물과 세존진신사리불탑, 지장보살입상, 종형사리탑, 관음보살상, 5층 석탑, 중창비 등을 조성하여 현재의 문화재 전통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년20여만의 수많은 방문객들의 기도도량, 참회도량, 수행도량으로서 참배하는 사찰로 확고히 자리하게 되었다.

  2. 대한불교조계종 내원사 내원사 기도법회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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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내원사 기도법회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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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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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13

    정기법회
    초하루 법회 : 매월 음력 초하루 [오전 10시]
    약사재일 법회 : 매월 8일 [오전 10시]
    미타재일 법회 : 매월 15일 [오전 10시]
    지장재일 법회 : 매월 18일 [오전 10시]
    관음재일 법회 : 매월 24일 [오전 10시]
    철야기도 : 매월 첫째, 셋째주 토요일

  3. 대한불교조계종 내원사 내원사 역사와 설화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내원사 역사와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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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내원사(內院寺)는 성북구 정릉4동 산1번지,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에서 산쪽으로 약 1Km 정도 올라간 곳에 자리하고 있다. 내원사는 고려 희종 4년(서기 1208년),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창건 당시의 사명(寺名)은 내원암(內院庵)이었다고 한다. 사적지가 멸실(滅失)되어 창건 이후의 역사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김정호(金正浩)가 1824년경에 제작한 서울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를 보면 내원사가 조선조 후기에도 현위치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상당한 비중을 지닌 사찰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선전도는 근대지도(近代地圖)에 가까운 실측 세밀지도로서, 도성의 주요도로와 시설, (부)部 (방)坊 동)洞, 성밖의 동리와 산.사찰까지도 자세히 표시하여 정확성과 정밀함에서 서울 도성(都城)의 지도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금도 사찰 뒤편에 석탑의 일부가 존재하고 있으며, 대웅전을 세울 그 자리에서 (명문)銘文이 새겨진 기왓장이 발견되었다.

    현재 종루(鐘樓) 삼성각(三聖閣),요사(寮舍)등이 복원되었으며, 1988년 11월 서울시에 전통사찰(제6-6호)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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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보문화재
    대운전(大雄殿)의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상(釋迦牟尼佛像)과 입상(立像)인 관세음(觀世音) 대세지보살상(大勢至菩薩像)이 봉안되어 있으며, 아울리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시왕도(十王圖).신중탱화(神衆幀畵)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 삼성각(三聖閣)의 내부에는 독성상(獨聖像)과 칠성탱화(七星幀畵).산신탱화(山神幀畵)가 봉안되어 있다. 특히 독성상은 보조국사가 당시 어지러운 시대 상황에 처해 고통받던 민초들을 위하여 부처님으로부터 말세중생을 구제하는 복전이 되라고 부족받은나반존자상을 조성하였다고 전한다. 천연바위에 돋을새김(陽)한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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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대한불교조계종 개운사 개운사 암자 대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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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개운사 암자 대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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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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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개혁가… 항일 운동가… 유불선 통달한 석학
    박한영스님 열반 61주기… 선운사서 재조명 학술세미나

    석전(石顚) 영호 스님은 속명인 박한영(1870∼1948)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우리 불교계의 대강백이자 선승이기 이전에 유불선에 통달한 석학으로 구한말 지식인 사회를 이끌었던 때문이다. 해방 후 조선불교 중앙총무원회 제1대 교정(종정)을 지냈고 1919년 한성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기도 한 항일운동가였다. 또 일제가 우리 불교를 일본화하려는 것에 맞서 불교 개혁을 주창하고 나선 운동가였다.

    석전 스님의 강맥은 운허 스님에게 전해지며 현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을 비롯한 한국 불교의 학승 대부분으로 이어질 만큼 큰 줄기를 형성했다. 석전 스님이 재가 불자는 물론 당대의 문사들에게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1926년 서울 안암동 개운사 대원암에 개설한 불교전문강원에서 신석정, 서정주, 이광수, 조지훈, 김달진 등을 지도했다.

    특히 광주학생 항일운동으로 서울중앙고보와 고창고보에서 퇴학당하고 방황하던 미당을 중앙불교 전문학교 제자로 불러들였다. 이처럼 두 사람의 인연은 각별하다. 미당은 석전을 “내 뼈와 살을 데워준 스승”이라고 부르며 평생 그 은혜를 갚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석전이 남긴 한시 3000여수 중 육당 최남선이 420편을 골라 ‘석전시초’를 묶었고, 미당이 이 중 130여수를 직접 한글로 번역해 간직했던 원고가 2006년 공개되기도 했다. 당대 최고 엘리트였던 최남선은 “나는 누구에게도 물어볼 것이 없는데, 석전 선생에게는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다.

    ‘석전’이란 호도 추사 김정희가 선운사 백파 큰스님에게 우정의 표시로 내린 것. 추사의 문기(文氣)가 가득한 호의 주인은 백파 문중의 7대를 내려와서야 주인을 만난 셈이다. 이런 연유로 그가 승적을 뒀던 전북 고창 선운사에서 석전 스님의 열반 61주기를 맞아 그를 재조명하는 학술 세미나 ‘석전 영호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이 20일 열린다.

    석전은 한국 근대 불교의 태두이자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선맥을 중시하는 한국불교의 풍토, 백파에서 비롯되는 선운사 문중의 세가 비교적 약했던 탓이다. ‘석전 박한영의 불교사상과 그 유신운동’(노권용 원광대 교수), ‘석전의 계율사상’(효탄 스님), ‘박한영의 항일운동’(오경후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선임연구원), ‘석전의 문학관’(김상일 동국대 교수)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 밖에 ‘석전의 선사상과 선종사적 배경 고찰’(김호귀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에 대한 연구가 있다. 한국불교 근세 3대 강백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석전은 유교의 경사자집과 노장 학설에도 밝았고 한시와 서법에도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다.

    최남선이 정리한 ‘석전시초(石顚詩초)’와 ‘석전문초(石顚文초) 등 9권의 책에 시, 논설, 수필 500여편도 남아 있다. 19일부터 11월 22일까지 선운사 경내 박물관에서 열리는 ‘석전 영호대종사 유묵(遺墨) 특별전’에는 스님의 글씨를 비롯해 가람 이병기 등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최남선이 석전 회갑에 쓴 축시, ‘석전시초’ 육필원고, 제자인 운기 스님에게 내린 전강게(傳講偈·문중의 제자로 인정한다는 글) 유묵 등 50여점이 전시된다.

    이외에도 선운사 측은 스님의 행장과 어록을 출간했고, 석전문학관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윤재웅 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석전과 문인들의 교류를 통해 그들의 상호텍스트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렇게 볼 때 선운사는 오늘날 한국 불교는 물론 근대 문학의 큰 줄기가 비롯된 탯자리”라면서 “이번 세미나는 종교를 떠나 구한말 최고의 지성인을 불러내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5. 대한불교조계종 개운사 개운사 암자 보타사 5acc405df0d6e700e52b6f7c09e04339_1718208561_88.jpg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개운사 암자 보타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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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타사 마애불 전경
     

    종목 : 시도유형문화재 89호
    명칭 : 보타사마애불 (普陀寺磨崖佛)
    분류 : 마애불(부동산)
    수량 : 1좌
    지정일 : 1993.04.03
    소재지 : 서울 성북구 안암동5가 7
    소유자 : 학교법인승가학원
    관리자 : 학교법인승가학원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개운사의 암자인 보타사 대웅전 뒤쪽 화강암 암벽에 조각된 고려시대의 마애불상이다. 이 불상은 1992년 서울문화사학회가 정기 답사 때 발굴한 것으로 높이 5m, 폭 4.3m의 거대한 보살상이다.

    머리에는 좌우 옆으로 뿔이 있는 관을 쓰고 있으며, 뿔 끝에는 복잡한 타원형의 장식이 늘어져 있다. 얼굴 생김새가 토실토실하며 어깨가 넓고 웅대한 형상을 하고 있다. 비교적 자연스럽고 미감이 풍부한 표정이며 옷은 양 어깨를 감싼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최근에 온 몸을 흰색으로 칠하여 백불(白佛)의 인상을 풍기는데, 입술은 붉은색, 눈과 눈썹, 윤곽은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마애불 어깨쪽의 좌우에 홈이 패여 있는 것으로 보아 불상을 보호하던 전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불 오른쪽 아래에는 제작 당시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남아있다.

    보타사는 개운사(開雲寺)에 속한 암자로서 개운사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타사의 대웅전 뒤에 있는 커다란 바위면을 'ㄱ'자 형태로 깊게 파고 그 안에 보살상을 새겼는데 측면에서 보면, 벽면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위쪽에는 자연석의 보개(寶蓋)가 늘어진 형태로 되어 있다.

    현재 마애불 앞에는 대웅전이 있지만 이 마애불상이 새겨진 바위면 좌우에 구멍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애불을 중심으로 별도의 목조 전각(殿閣)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낮은 부조로 새겨진 이 마애불상은 몸전체에 호분(胡粉)이 칠해져 있어서 흔히 '백불(白佛)'이라고도 부른다. 이처럼 불상에 호분을 두껍게 칠한 백불의 예로는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서울 홍은동 보도각 마애보살좌상과 안성 굴암사 석조약사여래좌상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 불상들은 갸름하면서 약간 살이 붙은 얼굴과 옷자락 사이로 주름들이 형식적으로 흘러내린 점등에서 양식적으로 거의 유사한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보타사 마애보살상이 새겨진 바위면은 보도각의 마애보살상 보다 더 굴곡져 있어 고개를 약간 숙인 얼굴이나 신체의 부드러운 선들이 바위 면을 그대로 이용한 듯하다.

    이 마애보살상은 5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으로 두 다리를 포개어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다. 머리 위에는 원통형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데 관대(冠帶)의 좌우에 늘어진 복잡한 장식이나 목걸이와 팔찌, 그리고 얼굴의 이목구비에 칠해진 채색 등이 흰색의 호분과 함께 화려하면서 장식적인 느낌을 준다.

    보살의 대의(大衣)는 모두 호분으로 칠해져 쉽게 구분되지 않지만 양어깨에 가볍게 걸쳐져 있으며 특히 왼쪽 가슴을 가로지르는 스카프 형태의 천의가 밖으로 흘러나오도록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올려 엄지와 둘째손가락을 맞대었고 왼손은 무릎 밑으로 내려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이 불상은 크기가 매우 크면서 특히 벽면 자체의 굴곡이 마애불의 부드러움을 더해주는 것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 지역에서 조성되었던 고려 후기 마애불상 중의 하나이다.

    마애불상의 왼쪽 편으로 '나무금강회상불보살(南無金剛會上佛菩薩)' 등이 새겨진 원패(願牌) 모양의 장식이 보인다. 원패는 원래 부처ㆍ보살의 이름을 적어 불단 위에 놓는 목제 장식물로 마애불상 옆에 새겨져 있는 점이 흥미롭다.

    원패는 시대마다 유행된 문양이 다른데 이 마애불의 원패처럼 연꽃 받침과 연잎이 장식된 직사각형 형태는 고려시대 사경(寫經)의 표지화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불상의 이름을 보타사마애보살좌상으로 표기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6. 대한불교조계종 개운사 개운사 연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개운사 연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3

    1396년(조선 태조5년) 무학대사가 영도사 창건(옛 이름)
    1870년(고종 7년) 화주 송담 수훈스님이 지장탱화, 시왕탱화, 사자탱화 조성 봉안 불사
    1873년(고종 10년) 명부전 중건 불사
    1883년(고종 20년) 화주 초은 선일,초암 기주가 불상 2구 개금, 1구 개분 1구 개채 영산전 후불탱화, 팔상도,감로탱화,신중탱화, 원불탱화 각 1점과 산신탱화2점 조성 봉안불사
    1885년(고종 22년) 덕해화상이 아산으로부터 1712년 제작된 범종1구 봉안 불사
    1911년 일제 사찰령 시행에 의거 봉은사 수반 말사로 지정, 김현암스님 제1대 주지로 부임
    1913년 제 2대 주지 이벽봉스님 부임, 왕가 소유 산림 4정 6반보 사찰 소유로 등록
    1915년 주지 안월송스님 대웅전 및 요사 개금 불사
    1921년 제5대 주지 이벽봉스님 부임, 큰방중창, 종각 불사
    1922년 안월송스님 시왕전 개금, 개분 불사
    1925년 주지 김동봉스님 사찰앞 석축 불사
    1926년 강원 설립
    1928년 금고 (쇠북) 1구 조성불사
    1929년 독성전 중건 불사
    1930년 후불, 제석, 독성탱화 조성봉안 불사
    1931년 경허스님 외4분 공덕비 불사
    1932년 노전(전각) 불사
    1934년 탁능허스님 신대법화, 박하담 스님 공덕비 불사
    1935년 덕해화상이 아산으로부터 가져온 범종을 일제에 의해 국방 헌납용으로 강탈당함
    1936년 신도 한봉계 기념비 불사
    1937년 박영원신도 기념비 불사, 임영해스님, 이벽송스님, 안월송스님 송덕비 불사
    1978년 조계종종정 이서웅스님 불신임으로 종정 채벽암스님 추대, 총무원장 윤월하스님 추대하면서 임시총무원 개원
    1981년 중앙승가대학 경내 개운회관 인수하면서 교사이전
    1992년 중앙승가대학 강의실, 도서관, 교수실, 연구실 등 지하1층 지상5층 정진관 완공
    1993년 4월 3일 보타사 마애좌상 서울시도 유형문화재 제89호로지정
    2006년 7월 6일 개운사 감로도 서울시도 유형문화재 제212호로지정, 개운사 신중도 서울시도 유형문화재 제213호로지정, 개운사 팔상도 서울시도 유형문화재 제214호로지정, 개운사 지장시왕도 서울시도 유형문화재 제215호로지정
    2006년 개운사 대웅전 단청 불사
    2006년 9월 14일 보타사금동관음보살좌상 서울시도 유형문화재 제216호로지정
    2008년 7월 범해주지스님 부임
    2009년 8월 4일 고려대학과 개운사 장학재단 설립
    2009년 11월 5일 개운사목아미타불상좌상복장일괄 서울시도 유형문화재 제291호 지정
    2010년 2월 22일 개운사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발원문 국가지정문화재(보물)지정고시

  7. 대한불교조계종 흥천사 흥천사 법회 및 기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2
    흥천사 법회 및 기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2

    정기법회
    초하루법회 :
    입재 - 음력 1일 오전 10시
    회향 – 음력 3일 오전 10시
    보름 영가천도 법회 :
    음력 15일 오전 10시
    지장 재일 법회 :
    입재 - 음력 16일 오전 10시
    회향 - 음력 18일 오전 10시
    일요가족법회
    어린이/청소년법회

    매월기도
    108신묘장구대다라니천일기도 :
    1차
    입재:2021년 11월 25일 오후2시
    회향:2022년 3월 4일 오후2시
    2차
    입재:2022년 3월 5일 오후2시
    회향:2022년 6월 12일 오후2시
    산신기도 : 
    입재 – 음력 18일 오후 6시
    회향 – 음력 24일 오후 6시
    (발원내용/ 사업번창, 상업번창, 매매성취, 재수대통)

    연중기도
    정초7일기도
    입춘7일기도
    용왕7일기도
    괘불재 7일기도
    동안거49일영가천도기도
    칠월칠석7일기도
    백중49일영가천도기도
    입시100일기도
    동지3일기도

    천도재 : 단독150만원/동참30만원(매월 1~2회봉행)
    명절(설날/추석) 합동 차례 : 당일 4번의 차례가 있습니다.

  8. 대한불교조계종 흥천사 흥천사 전각 배치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2
    흥천사 전각 배치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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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극락보전 / 2 명부전 / 3 대방 / 4 용화전 / 5 독성각 / 6 북극전 / 7 종각 / 8 노전 / 9 삼각선원(손잡고오르는길) / 10 늬티나무어린이집 / 11 7층석탑

  9. 대한불교조계종 흥천사 흥천사 극락보전(興天寺 極갪寶殿)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2
    흥천사 극락보전(興天寺 極갪寶殿)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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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천사 극락보전(興天寺 極갪寶殿)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6호
    1853년(철종4)

    조선 태조가 신덕왕후의 원찰로 창건한 흥천사의 극락보전은 서방 극락세계에서 설법하고 있는 아미타불을 봉안한 법당이다. 철종 4년(1853)에 구봉 계장(九峰啓壯) 스님이 건축하였다. 규모는 정면 3칸·측면 3칸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인 다포양식 건물이다.

    돌층계를 정면에 두고 기둥은 창방과 평방으로 결구하고 기둥 사이에도 전·후면에서는 각 2구, 측면에서는 각 1구의 공간포를 두었다. 정면 3칸에는 꽃살 창호를 달고 좌·우 뒷면은 판벽이다. 내부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가운데 우물천정을 두었다. 문에는 화려한 꽃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가운데 두 기둥 위에 돌출 되어있는 용머리 장식이 특징이다.

    이 극락보전의 구조와 형태는 조선시대 말기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19세기 사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화려한 목조 건축으로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 주고 있는데, 서울에서는 희귀한 사찰 건축이므로 매우 귀중하게 평가받고 있다

  10. 대한불교조계종 흥천사 흥천사 명부전(興天寺 冥府殿)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2
    흥천사 명부전(興天寺 冥府殿)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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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천사 명부전(興天寺 冥府殿)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7호
    1855년(철종6)

    흥천사 명부전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해 주는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으로 철종 6년(1855)에 순기( )스님이 세웠으며, 고종 31년(1894)에 중수되었다.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단층 목조건물로서 좌우에 풍판을 달았으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내부에는 살미첨차가 판형(版型)으로 운봉(雲峰)을 조각하였다.

    기둥 위에는 밖으로 용머리를 모양 있게 장식하였고, 안으로 용꼬리를 새겨 놓아 건물의 격을 높이고 있다. 건물 안에는 지장보살상을 중심으로 무독귀왕·도명존자·시왕·판관·인왕상 등이 모셔져 있으며, 그 뒷면 벽에는 지장보살의 모습이 담긴 불화와 시왕(十王)을 그린 불화가 걸려 있다. 명부전에 모신 지장보살은 안락한 정토세계로 이끌어 주는 아미타부처를 가까이 모시는 협시보살이기도 하다. 흥천사 명부전은 옛 목조 건물의 전통을 이어 받았으면서도 단순하고 소박하게 장엄된 법당으로, 조선 후기 사찰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